佛 `레지옹 도뇌르' 수상 첫 한국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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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레지옹 도뇌르' 수상 첫 한국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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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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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명조 기자 = "`脫한국' 사회 문제점 찾아 개선해야"

     "겉으로 드러난 것만 평가해온 우리 사회는  이제 인간본연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나라도  아닌데  왜현실 불만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 `이민열풍'이 부는 걸까요?  우리의  지성인들은 사회전반에 걸쳐 진지하게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해야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에는 빠짐없이 가운데에 앉아 정상간의  대
화를 잇는 언어 가교역을 해온 최정화(崔楨禾.47)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교
수의 한국사회 현주소에 대한 진단이다.

    경기여고와 한국외대를 수석졸업하고 파리 제3대학 통역번역대학원(ESIT)에  유
학해 1981년 한국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가 됐고, 1986년 아시아 최초의  통역번역
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25일 저녁6시 서울 서대문구 합동 프랑스 대사관저에
서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온통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최 교수는 요즘도  하루  일정이
빠듯할 정도로 워낙 바삐 살고 있어 직접 만나 대면인터뷰를 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에 앞서 23, 24일 이틀간 고베대학에서 열린  일본
통역학회 주최 학술대회에 한국 국제회의 통역학회 회장 자격으로 공식초청받아  기
조연설을 하느라 일본을 다녀왔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중인  최  교수와
전화접촉을 했으나 `여간 짬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탑승직
전까지 전화 인터뷰를 해야 했다. 탑승수속 시간 때문에 미처 묻지 못한 부분은  24
일 밤 e-메일 인터뷰로 보완해 마무리지었다.

    유선전화로 진행된 인터뷰 도중에도 최 교수의 휴대전화가 무려 수십 번이나 울
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그의 일정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성은 우수해요. 국민은 열정적이죠. 그런데도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제대로 안지켜지고 남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죠. `남과 더불어 사는'
기본기가 갖춰져 있지 않아요."

    때마침 북한의 핵문제로 우리나라가 세계 역사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시점인 만
큼 이를 계기로 우리 문제점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본연의 정체성, 곧 민족의 참모습
을 찾아 한국의 이미지를 국제무대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최 교수는 톤을 높였다.

    "영어말인가요? 영어만 잘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가요? 그것만이 최고가  아니라
는 사회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영어는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국제무대에
서 활약하기 위해 지녀야 할 무기로서 갈고 닦아야 하지만 영어만을 추구하면  부작
용이 뒤따릅니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 목표가 정돈돼 있지 않고 뒤섞여 있어요."

    지난 26년 동안 역사의 현장, 외교의 무대를 지켜본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최
교수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못내 궁금했다. 그
러나 그의 접근법은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능력도 중요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신의가 중요합니다.  국익
차원에서 신의를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6.25때 다른 많은 나라들이  우
리를 도와주었어요."

    국제무대 외교현장에서 힘을 보태주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그가 지켜본  우리나
라의 서글프면서도 냉정한 현실이란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도 그런 말을 했는데, 국제.외교
관계가 리더들의 관계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우리나라도 세계 리더들과의 네트워킹
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1986년부터 한-프랑스 정상회담의 프랑스측 통역을 맡아온 최 교수의 `대통령관'
을 묻는 질문에는 전두환(全斗煥).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
령을 `통역사 친화적' 대통령으로 꼽았다. 전 전 대통령은 메시지가  명확하고,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논리적으로 말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26년 통역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김수환 추기경이 단연 1위  자
리를 차지했다.

    "1983년쯤으로 기억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통역하기 위해 만났는데 여러 외국
어를 하시길래 숫자를 좋아하시지 않는 추기경님을 다그쳐 물었더니  `한국사람이니
우리말, 일제시대에 태어났으니 일본어, 미국이 최강국이니 영어, 독일에서  유학했
으니 독일어, 교황님 계시니 이탈리아어, 성서 읽어야 하니 라틴어, 이탈리아  오가
는 중간에 프랑스 있으니 프랑스어, 믿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말과 때로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거짓말까지 합해 모두 9개국어를 한다'고 말씀하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1993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대전 엑스포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하는 짧은 20분 동안에 그 요란스런 프로펠러 기계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책을 꺼내 읽는 것을 보고는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단다.

    요즘은 우리의 총체적인 에너지를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에게 제대로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지난 6월 설립한 `한국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연구
원'(Corea Image Communication Institute:CICI)의 이사장으로서 한국의 이미지  개
선작업에도 열과 성을 쏟고 있다.

    CICI 인터넷홈페이지(www.coreaimage.org)에서 `한국이미지 먹칠 영어표현 공모
전'이 28일까지 열리는 것도 그의 애국심의 발로다. 한 놀이공원 휴지통에 쓰레기를
여기 넣으세요'란 뜻이 아니고 `낭비하세요'란 뜻의 `waste please'라고 쓰인  것을
보고 외국인들이 보면 포복절도할 잘못된 영어표현을 찾아내 시정키로 마음먹었단다.

    여덟 차례에 걸친 한-프랑스 정상회담과 UPU(만국우편연합) 서울총회, IPU(국제
의회연맹) 서울총회, APEC(아태경제협력체) 마닐라 정상회의,  ASEM(아시아유럽정상
회의)런던 정상회의 등 1천800여차례의 국제회의를 통역해 온 최 교수는 `레지옹 도
뇌르' 훈장 외에 1992년 프랑스 정부에서 교육공로훈장(Palme Academiuque)을, 2000
년 통역계 학술업적 공로상인 다니카 셀레스코비치상을 아시안인으로는 처음 받기도
했다.

    그의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했던 `외국어를 알면 세계가 좁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최 교수는 1995년 서른 아홉 살의 늦은 나이에 반려자로 맞은 프랑스인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

    캐나다로 싱가포르로 세계 각지를 돌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근무
하고 있는 남편은 고국땅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가 한국인 아내에게
돌아간 것을 축하하기 위해 25일 처가 나라를 방문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 받는 상이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러나 저 개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여성한테 주는 상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상을  받
고 보니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동시통역사로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입니까.

    ▲통역은 가장 앞선, 또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이 통역사들에게 주어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
습니다. 만약 통역사란 직종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많은 정치인,  기업인,
예술인, 종교인 등 세계적인 리더들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은 설립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지요.

    ▲6월3일 창립한 이래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국력과 잠재력
에 걸맞은 한국의 이미지를 널리 알려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각계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1등만 했다면서요.

    ▲ 아는 것은 비슷한데 아마 제가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전달하는  능력이
좀 앞섰던지 솔직히 성적은 항상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남편과는 얼마만에 한번씩 만나십니까.

    ▲`격주 부부'라고나 할까요. 불가피하게 떨어져 살고 있으니 더 열심히 치열하
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배려해주는 남편에게 그저 고
마운 마음입니다.

    --나름대로 터득한 외국어 습득의 `비책'이 있을 법한데요.

    ▲외국어를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전을 보지 않고
죽 읽어 나가면서 전체의 뜻을 파악하면 글의 맥락과 표현방식에 익숙해지게   됩니
다. `몸통찾기'라고 할 수 있죠. 그 다음은 `깃털찾기'로 새로운 단어, 숙어, 문장,
표현법 등 하나하나 주의를 기울여 체크하고 정리하고 라디오 방송을 10분 정도  녹
음해 집중해서 듣는 게 도움이 됩니다. 또 말은 할 수록 늘게 마련이니 외국인과 만
나 평소 익혀둔 표현을 활용하고 정확한지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익힌 표현이 상황에 부딪히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도록 체득하는  것이  외국어
능력에 필수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어릴 때 외국생활 경험이 있습니까.

    ▲대학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미친듯이 영어,  프
랑스어 공부에만 매달렸어요. 1979년 9월 파리에 도착해 81년 6월 통역대학원  졸업
때까지 시간은 내 인생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 이전에는  한번도   외국생활
을 해보지 않은 순 토종한국인이었습니다.

    mingjoe@yonha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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