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어문화교육과 국내 영어몰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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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국어문화교육과 국내 영어몰입교육
  • 김영자
  • 승인 2008.09.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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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자(독일 레겐스부르크대 명예교수, 본지 칼럼니스트)
필자는 지난 8월 한달 경주 동국대학교에서 4주간 재독 학생으로 구성된 한국어문화연수를 주관했다. 그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항공·연수비를 지불하면서 한국어를 좀 더 잘 배우겠다고 독일에서 먼길 한국까지 왔다.

놀라운 것은 이 독일인 연수생들이 한국의 생활문화와 전통문화까지 겸한 참으로 빡빡한 일정을 열심히 소화했다는 사실이다. 그 성실한 태도가 우리 교수들에게는 경탄스런 모습 자체였다.

‘한국의 세계화’에 한 축을 이룰 귀한 싹들이 독일 땅에 뿌려지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독일은 이 싹들이 자라기에는 여러모로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에게는 희망에 찬 기대주다.

이런 씨앗이 지구촌 이곳저곳에 한 톨 한 톨 떨어지면서 어느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지리라. 이것이 연수 주관자들의 한결같은 희망이자 기대이다.

4주 연수를 마친 수료식 행사에서 20여명 독일 학생들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한국인의 친절한 접대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간 연수생들이 한국어와 문화를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보여준 구체적 증거가 있다.

처음 노래방에 갔을 때에는 한국어 자막을 잘 읽지 못하다가 3주째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글 자막을 줄줄 읽어가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무언극으로 표현했을 때 우리는 이 연수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연수생의 ‘한국어문화 배우기 열성’에 감격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연수생을 이끈 필자는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무더위 속에서 개성이 강한 서양인들과의 힘들었던 4주간이 이순간 싹 사라졌다. 매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필자가 해외 한국어교육자임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까지 뻗는다. 이 보람 하나로 힘든 과제를 매해 초가 되면 다시 준비를 하는가 보다.

이번의 한국문화연수과정이 시작한지 이틀 후에 겪은 일이다. 우리가 체류하는 기숙사에 수많은 버스가 들이닥치더니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하는 젊은이들을 몇 백명 ‘토해놓고’ 떠났다. 왁자지껄 소통언어는 한결같이 영어였다. 알고보니 영어권 한인자녀들이 소위 자원봉사자로 국내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초청받았다”고 했다.

금년 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재미동포모임에서 한 약속을 지킨 첫 ‘대한민국 영어몰입교육의 자원봉사자’단이었다. 총 410명으로 미국, 호주, 캐나다 등지에서 선발된 자들로 대부분 한국인 부모를 가졌다.

재독 동포 자녀들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한국말 구사가 꽤나 서투르다. 반면에 재 영어권 자녀들의 절반 정도는 한국말을 하고, 절반 정도는 묻는 한국말에 답을 못했다. 부모가 한국인이며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26살 짜리 여성은 한국말을 그런대로 했다. 다만 한국에는 “난생 처음 왔다”고 한다.

어떤 남학생 역시 “부모의 나라 한국의 문화가 무척이나 생소하다”고 했다. 한국의 정서, 문화, 한국인의 정체성이 취약한 이들이, 한국어 구사도 제대로 못 한다고 언론, 교육계의 걱정이 태산같은 국내 초등학생들에게 어떻게 한국문화와 정서가 깃든 영어교육을 할 지 의심스럽기만하다.

그 뿐이랴! ‘영어 군단’이 2~30분 앉았다 떠난 자리는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피자 주문 상자들과 담배꽁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재떨이가 혼자 외롭게 서 있었다. 과도한 노출의상 착용은 더위에 어쩔 수 없다 하더래도 입이 잠시도 쉬지 않는 무질서라니!

행인의 눈쌀을 찌뿌리게 할 행동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미국식 ‘자유분방 교육’의 덕택이랄까?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지킬 ‘영어교사’가 그중 몇 명이 될까? 내 우려로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쯤 그들은 2주간 씩 ‘영어교수법’ 연수를 마치고 각자 지정된 학교로 배치돼 영어몰임교육자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염려는 작지 않다.

그들이 겪을 한국문화와의 충돌에 대해 정부는 고려해 본 적이 있을까? 한국초등학생들이 영어교육 중 교사들의 미국식 정서나 생활방식과 표현에서 받을 충격이 어떠할까?

해외에서 낳고 자란 ‘영어자원봉사자들’이 겪을 한국문화와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지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해외 한국어교육자의 한 사람인 나의 우려로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한민국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세계 유일의 한글로 한국말을 표기하는 나라이다. 동양 세계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며, 문화 역시 서방세계와는 판이하다. 현 시대에 들어서 산업언어로 영어가 주언어가 됐지만 문화와 역사, 전통이 골 깊이 새겨진 우리 모국어는 분명히 한국어이다.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영어나 다른 언어가 직업상 필요한 사람들은 당연히 유창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필요한만큼 습득할 터이다.

유럽의 어느 나라도 자국의 언어교육에 우선해 영어교육에 몰입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안다. 국가가 정책으로 ‘영어몰입교육’을 장려하는 나라는 자국의 주체성을 포기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또한 정부의 무분별한 언어 정책은 그것을 부추기는 특정 계층의 ‘무리’의 수요에 따름인 것도 안다. 이 사실이 필자를 더욱 슬프게 한다. 말리지 못하는 필자의 무력함에 분통이 터질 정도이다.

요즘 자주 언론에 떠오르는 ‘국적세탁’에 이르면 더 말해 무엇하랴. 해외 명문학교에 보내기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 베네주엘라 등 영어권 나라의 영주권을 사기도 하고, 일시 입양을 보내는 부모들이 서울 특정지역에 많다는 보도를 먼 독일에서 듣는 필자의 심정은 참담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녀 영어교육’에 미쳐 돌아가는 행동은 바로 주체성을 뺏는 정부 국제언어교육정책을 더욱 부추기는 행위이다. 한국의 세계화? 빛깔 좋은 개살구다!

한국홍보 도약, 허공에 공들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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