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거소증,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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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거소증, 이대로 좋은가?
  • 한상대
  • 승인 2008.08.07 10: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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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대(본지 편집위원, 명지대 교수)
L 씨는 한국에 거주한지 8년째 되는 미국동포이다. 그는 며칠 전 자기 땅의 등기부등본을 땔 일이 있어 집 가까이 있는 주민센터(동회)에 갔다.

동회 직원이 복도에 있는 기계에서 서류를 뽑으라고 해서 그는 기계에 가서 주민등록번호 대신 그의 재외동포 거소증 번호를 입력했다. 그러나 거소증으로는 그의 신원확인이 안 되어 거부를 당했다. 그의 부동산이 있는 곳은 차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라 다녀 올 엄두를 못 냈다. 그는 할 수 없이 등기부등본을 갖고 만나기로 한 사람과 약속을 취소 했다.

그는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오려고 은행에 가서 해외현금인출카드를 신청했더니 외국인이라 안 된다고 거절 당했다. 그는 은행직원에게 "이 거소증은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데 주민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에서 만든 거니까, 직원의 착오 일 수가 있다"며 다시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은행 본부에 전화로 확인한 직원이 "동포는 외국인이라 안 된다"고 다시 못 박는다.

그는 며칠 전 2년마다 갱신하는 거소증 날자를 이틀 넘겨 출입국관리국에 가서 벌금만 10만원을 물었다. 그는 갱신 때 마다 은행 등 관계기관에 거소증 새 번호를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혼선이 자주 빚어졌다.

인터넷이 생활화 되어 있는 그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5자로 시작하는 그의 거소증 번호로는 가입이 안 된다. 그가 좋아하는 바둑을 두기 위해 친구 이름으로 된 사이트에 들어가 두고 있다. 처음 한국에 귀국하여 차를 살 때에도 "외국인은 현찰이 아니면 할부 구매는 안 된다"고 해 거절 당했다.
70세인 그는 지하철 경로우대도 못 받는다. 친구들은 다 무료로 들어가는데 L 씨는 혼자 표를 사러 간다. 은행이나 관청에서 거소증이 인정이 안되어 여권까지 제출을 요구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한국에 살 맛이 없어졌어요” 그의 한탄이다. 거소증은 1999년 9월 외국적 동포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재외동포법을 제정, 같은 해 12월부터 시행됐다.

거소증 매력 때문에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동포들도 꽤 된다. 부동산의 경우 ‘국내거소신고를 한 외국적 동포는 대한민국 안에서 부동산의 취득, 보유, 이용 및 처분을 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대부분 기관은 여권사본을 주문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인증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효력을 갖도록 부여된 13자리 번호가 무용지물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거소증으로 의료보험을 가입 할 수는 있지만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수 있는 증명카드로 거소증을 통용시키려던 원래 입법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생겼다.

국내에서 거소신고를 한 재외동포는 약 10만 명으로 미국동포가 절반이상을 차지하며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호주, 독일 등이 뒤를 잇는다. 이 중 외국국적 시민권자는 4만 명 미만이다. 이왕 시행된 법이면 사용자가 시혜를 받도록 해 주어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게 해 주어야 한다. 오히려 원성을 사는 일이 많다면 이는 정부가 우를 범하고 있음을 말한다. 국내에 살고 있는 소수의 동포를 따뜻하게 껴 안아 주지도 못 하면서 세계화와 다문화 사회를 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7백만 명의 재외동포가 국내 거소증을 주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