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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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자이크
  • 윤조셉
  • 승인 2008.08.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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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조셉(국제통상전략연구원 원장)
호주 캔버라에 살고 있는 줄이아와 베리를 보면 정말로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냐하면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배경과 특징을 잘 조화하여 하나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줄리아 가족은 10명의 대가족이다.

친자식 두 명을 낳은 후에 이 부부는 인도에서 4명, 한국에서 1명, 그리고 대만에서 1명을 입양해서 총 10명이 살아가고 있다.

아들 호용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호용은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아기였고, 그가 이 가정에 가져다 준 기쁨과 행복 때문에 이들은 다른 아이를 또 입양하기로 결정하였다.

눈이 안 보이는 채로 태어난 대만의 한 아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들은 즉시 그가 이들의 아들임을 느꼈고, 호용이 2살이었던 해에 조엘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조엘은 호용과 불과 5개월 차이이지만 호용의 몸무게에 반밖에 나가지 않는 앙상하게 마른 아기였다.

2살의 조엘은 우유병을 빨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했고, 아무런 호기심도 느끼지 못하는 조엘은 너무도 쉽게 이들 가정에 적응한 호용과는 대조적이었다.

4년 후에 이들은 다시 입양을 위해 해외로 발길을 돌렸고, 이번에는 두 형제를 인도에서 데려왔다. 그들은 외딴 마을의 기차역에 그들 아빠에 의해 버려졌고, 2년 동안 고아원에서 지냈는데 당시 큰 아이인 마드후는 대략 8살, 작은 아이인 사단은 3살로, 이들은 자신의 나이도 몰랐고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둘 다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그 부족언어 밖에 할 수 없었던 마드후와 사단은 항상 슬퍼했고 외로워했고 두려움에 가득 찬 채 열악한 고아원의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살아가야 했다. 동생인 사단은 버려진 후 언어 장애 증세가 생겨 거의 2년을 말을 못할 정도였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1998년 인도 남부의 고아원에서 2년 동안 지냈던 아들 아킬과 딸 사빌라를 다시 입양해, 자랑스러운 8명의 자녀를 가진 가정을 이루었다.

이들이 아이들을 입양했을 때, 아이들이 태어난 나라 역시 입양했다고 한다. 호주, 한국, 대만, 인도의 다민족 가정이 되었고 이들의 음식, 취미, 음악도 바뀌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이들 삶을 정말로 윤택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큰 기쁨이었다고 한다.

크리스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국가에서 그리고 6개의 언어권에서 태어났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임을 강력히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이들에게 ‘얼마나 운 좋은 아이들이냐’ 라고 말하곤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은 바로 이들 부부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도 않지만 그들 자녀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이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고 부모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고 오히려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이들에게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 상임고문인 미국 워싱톤주 신호범 상원의원은 본인이 입양인이기에, 입양인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은퇴 후 전세계에 있는 입양인들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모자이크에 동참시키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OKTA를 비롯한 많은 동포 경제인들이 입양인,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장학재단 및 후원회를 통해 나눔을 실현하여 아름다운 모자이크에 참여하고 있다.

세상의 기준을 넘어선 참된 사랑을 통해 느끼는 그 기쁨은 우리 모두의 특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