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민사박물관의 마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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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이민사박물관의 마체타
  • 정길화
  • 승인 2008.06.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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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문화방송 PD, 본지 칼럼니스트)
인천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들어섰다.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축면적 4천100㎡ 규모다. 이번에 완공된 것은 미주관이며 앞으로 아시아관, 유럽관, 교육동 등을 갖추는 2단계 사업이 추진된다고 한다. 지난 6월 13일 거행된 이민사박물관의 뜻깊은 개관식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최초의 근대 개항지인 인천(제물포항)은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 120 여명이 출발한 곳이다. 이후 65편의 이민선을 통해 한인 7천 800여명의 한인이 하와이로 건너가 오늘날 2백만 재미 한인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인천은 1905년 멕시코 에네켄(애니깽) 농장 이민 1,033명이 출발한 곳이다. 이들 중의 일부는 16년 뒤 쿠바 이민자의 원조가 된다.

이렇듯 미국, 멕시코, 쿠바 이민의 출발지는 인천이다. 근대 이민의 시발점이 바로 인천인 것이다. 낯선 땅으로 떠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는 고난의 개척자들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조국의 땅이 제물포항 언덕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그리워했을 뭍도 이곳이다. 오늘날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문 국제공항이 인천에 있다. 그 인천에 이민사박물관이 자리잡은 것은 응당 자연스러워 보인다.

박물관은 역사의식과 기록문화를 담아두는 최적의 공간이다. 하와이, 멕시코, 쿠바 동포들은 인천을 모항(母港)으로 두고 있다. 이들의 시조는 조선조말, 대한제국 시기에 조국을 떠났다.

초기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 에네켄 농장의 고된 노동 속에서도 식민지로 영락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모금운동을 했던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후손들이 박물관 건립에 열정과 관심을 보인 것은 유장한 뿌리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모천으로 돌아온 연어처럼.

이민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실은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제물포항 등 한국 첫 공식 이민의 역사를 보여준다. 제2전시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미주 이민자를, 제3전시실은 멕시코, 쿠바 등 중남미 이민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4전시실에서는 700만 해외동포 현황과 인천의 미래상 편이다. 이중 제2, 제3 전시실이 하이라이트다.

범상한 눈으로 보면 그저 그런 구닥다리 물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세기 전 열악한 시대를 떠올리며 몰입하여 보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전시품들도 꽤 있다. 미국과 멕시코 등지의 동포들이 유물 수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들의 번호표 방고나 수레를 보면 당시의 체취와 애환이 아직도 서려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멕시코에서 온 마체타(칼)였다. 지난 2005년 필자는 멕시코 이민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현지의 에네켄 농장을 가본 적이 있다.

에네켄은 가시가 많은 백마(白麻) 식물로 줄기는 짧고 살이 두껍다. 꼭지 부분에는 날카로운 피침이 있다. 껍질을 벗겨내 섬유질을 추출해 주로 선박용 로프를 만든다. 억센 가시가 양쪽에 붙어 있는 에네켄에서 이 마체타로 잎을 잘라내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칼날처럼 돋아난 꼭지의 피침과 양쪽의 가시들로 손은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취재 당시 멕시코 유카탄 메리다에서 나는 실제로 오랜 에네켄 노동으로 손이 엉망이 된 한인 후손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손은 지난 100년 동안 멕시코 한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삶을 표상하고 있었다.

녹슨 마체타는 바로 그것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제3전시실의 에네켄 채취용 칼 마체타. 2008년 한국, 우리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인천 월미도로 가보라고 이 연사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