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형 매개로 재외동포 정체성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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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형 매개로 재외동포 정체성 문제 제기
  • 최선미 기자
  • 승인 2008.05.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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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작가 데비 한 개인전‘혼성 여신들'전
▲ Walking Three Grace, lightjet print, acrylic, aluminum 220x150cm, 2007

경기도 파주시 예술마을 헤이리에 있는 갤러리 터치아트(Touch Art)에서 동포 출신 작가 데비 한의 개인전‘Hybrid Graces'전이 지난 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디지털 사진작품인 ‘일상의 비너스(An Everyday Venus, 2006)’의 연작 '여신들(Graces)'과 전통공예 기법인 나전칠기를 응용한 조각 작품 ‘스포츠 비너스(Sport Venus)' 등 총 20여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데비 한(Debbie Han)은 어린 시절 이민으로 미국에서 성장한 후, UCLA대학과 뉴욕 프렛인스티튜트(PrattInstitute)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재미동포 작가. 한국인과 미국인의 경계에 서있는 이러한 다중적인 사회, 문화적 배경이 그녀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여신들(Graces)'은 비너스를 비롯한 서양 고대 여신들의 두상을 한국 여성의 몸 사진과 결합한 사진작품이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 한희원 씨는 “동양 여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체형을 사진으로 찍은 후, 석고상의 얼굴과 합성한 것이다"며 "디지털 기기를 통해 몸의 표면을 조각처럼 매끄럽게 만들고 채색하는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작가의 준비 기간이 길었다”고 창작 과정을 전했다.

터치아트 2층에 전시되고 있는‘수줍은 여신(A Shy Grace), '자위하는 여신(Masturbating Grace)', '걷고 있는 세명의 여신들(Walking Three Graces)', Bowing Grace(인사하는 여신)‘, ’Talking Three Graces(대화하는 세명의 여신들)‘, ’Two Graces(두 여신)’ 등이 그 같은 디지털 작업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세 여신의 포즈가 서구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광경과는 다른 데가 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으로 데비 한이 창조한 ‘여신들(Graces)’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몸짓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 데비 한은 미를 매개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동시에, 역으로 각 문화권의 다양한 정체성의 경계들을 인식하고, 그것에서 출발해 “미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또 ‘스포츠 비너스(Sport Venus)’를 통해서도 조각과 공예가 혼성된 신개념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 작품에서는 한국의 전통 공예 기법인 나전칠기를 이용해 축구공, 야구공, 골프공 등의 형태가 결합된 비너스의 두상을 감상할 수 있다. '여신들(Graces)‘이 미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했다면, ‘스포츠 비너스(Sport Venus)’에서는 현대 소비사회에서의 여성 정체성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희원 큐레이터는 “작가 노트에도 드러나 있지만, 스포츠가 대중에게 이슈가 되고 소비되고 있는 것처럼, 여성의 아름다움도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산마냥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외동포 작가 데비 한은 지난 10여년간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호응을 얻고 있는 작가 중 한명으로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일본의 아티스트 레지던시(ARCUS Project)로부터 5개 국가를 대표하는 5명의 작가 중 한명으로 초대받았으며, 뉴욕 국제미술재단으로부터 폴락 크래스너 파운데이션 그랜트(Pollock-Krasner Foundation Grant)를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