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국경을 넘어 ‘월경인’으로 교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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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국경을 넘어 ‘월경인’으로 교류한다
  • 이현아 기자
  • 승인 2008.04.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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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국제학교 학생.교사 등 41명 지난 9일 안성 방문

아힘나평화학교“해외 한인청소년들과 교류 넓혀가겠다”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문성경(17) 군은 재일동포 3세로 올해 26명의 친구들과 함께 새롭게 문을 연 코리아국제학원에 입학했다. 훗카이도 출신의 여대생 모우리 나미코 씨 또한 한국 유학 중 코리아국제학원의 소식을 듣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교사로 지원해 중등부 담임교사가 됐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재일동포 사회의 사람들이 모여 개교한 코리아국제학원 27명의 학생과 6명의 교사가 지난 9일 경기도 안성 삼죽면의 아힘나평화학교를 찾았다.

지난 7일 일본 오사카에 문을 연 코리아국제학원은 중학교 1년생 12명과 고등학교 1년생 15명의 학생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조선학교나 건국학교는 물론 일본학교에 다녔거나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섞여 있고 5명의 평교사 또한 일본인, 미국인, 재일동포 등 다양한 출신을 자랑한다. 다문화공생, 인권과 평화, 자유와 창조를 교육이념으로 삼아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민족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재일동포들이 직접 세운 코리아국제학원의 첫 신입생들을 아힘나평화학교에서 만났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문 군은 부모님의 권유로 코리아국제학원 입학을 선택했다. 수업시간 중에 짧게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문 군은 “(조선학교의) 교육방침 중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조선학교 대신 코리아국제학원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르다고 생각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일본어로 대답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한 문 군은 “죽 조선학교의 교육을 받아오면서 재일동포로서 살아가는데 조선학교는 북한 일변도의 일방적인 시각으로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의 입장에서가 아닌 보다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학교를 그만두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코리아국제학원에 대해 알게 됐고, 관심을 가지게 돼 마침내 입학했다”고 진지한 눈빛으로 답했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누나와 형은 성경 군의 이런 생각에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며 “매우 좋겠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코리아국제학원이 문 군을 만나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이번에 코리아국제학원생들을 초청한 아힘나평화학교의 김종수 교장은 “2006년 조선학교와 접촉을 넓혀가던 중에 코리아국제학원을 세우려고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 교류하게 됐는데, 당시 조선학교의 입지가 축소되던 시기에 조선학교의 줄어드는 입학생들을 뺏어가는 꼴이 돼 (재일동포사회의)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며 “하지만 이들이 우리 동포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을까, 대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기대도 컸다”고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김 교장은 역사적으로 조선학교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적었던 것을 지적하며 “이들이 이어나가고 있는 민족교육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투쟁이 뒷받침 됐는데 한국 정부는 너무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며 “심지어 이번 코리아국제학원이 개교하는 때에도 한국 측에서는 지원해 줄 테니 태극기를 걸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더라. 얼마나 건학이념이나 사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자명하게 드러난다”고 성토했다.

마침내 개교한 코리아국제학원에는 다양한 학생과 교사 지원자가 몰렸다. 개교를 맞은 유태성 부교장은 “이렇게 많이 와 주었으니 우리의 커리큘럼, 이념 등이 동포사회의 인정을 받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부교장은 이어 “복잡한 역사 속에서 동포사회마저 비좁은 역사 안에 갈라져,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아이들이 장래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월경인’이란 이런 아이들이 국가, 민족 등에 대해 영역을 느끼지 못하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능력, 대화에서부터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감각을 가르칠 수 있도록,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학교의 이념을 설명했다.

교사 신축이 8월 중으로 알려지면서 수업할 공간을 찾고 있던 코리아국제학원은 가을 이후로 예정됐던 아힘나평화학교 방문을 앞당겼다. 코리아국제학원의 학생 중 20% 정도는 한국어를 못한다. 김 교장은 “수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학당이나 사설 연수기관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아이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들을 초대했고, 비록 소박한 학교에 생활환경이지만 이곳에 찾아와 즐겁게 지내준 코리아국제학원 학생들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현재 문 군을 비롯해 27명의 재일동포 학생들은 아침 7시 10분에 기상해 역사, 사회, 한국어, 일본어, 영어, 가정, 체육 등 정규과목을 6교시의 수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힘나학교의 한국 아이들과 공동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한편, 수원 화성과 철원 군사분계선 탐방, 5․18 광주민주화성지 기행 등을 통해 한국을 체험하기도 했다. 코리아국제학원 학생들은 내달 24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현재 코리아국제학원은 교장, 부교장, 5인의 교사 등으로 진용을 갖추고 8월 중으로 학교와 기숙사를 신축해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 부교장은 “대개 교과서는 한국에서 공수해 쓰고 있지만, 역사의 경우에는 현대사 등을 더욱 보강할 수 있도록 직접 제작할 예정으로 3년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교사 및 추가 신입생을 가을 중 모집할 예정이다. 재일동포 친구에 매료돼 한국 유학을 택했고, 현재 코리아국제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인 나미코 씨는 “현재 교사, 교재, 학생 등 모든 것이 충분하지는 않은 상태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재일동포 사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교사로 지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교장은 “한인 청소년들이 스스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 가운데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교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도다”며 “현재 해외 각 지역의 아이들이 이번 코리아국제학원생들과 같이 아힘나평화학교를 통해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현재 독일, 유럽 등 어릴 적 해외에 나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해외 한인 청소년들과의 교류를 모색하고 있고, 사할린 등과는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귀띔해 이번 교류가 향후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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