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피자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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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피자의 ‘나비효과’
  • 정길화
  • 승인 2008.04.0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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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문화방송 PD)
최근 들어 한국의 중소 피자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유인즉슨 중국인들이 피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 중국인들의 피자와 한국의 피자 가게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베이징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뉴욕에서 폭풍이 분다는‘나비효과’의 얘기는 들어 봤어도 이것은 도대체 웬 말인가.

다름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피자 소비가 늘면서 피자의 주요 원료인 치즈의 국제 가격이 엄청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자 한국내 중소 피자 가게들이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하는 것이었다. 대형 피자가게는 버틸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가게들은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태리에서 피자 유학을 다녀온 주방장들이 선보이는 다양하고 맛깔스런 피자를 이제 갈수록 맛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6년 전 필자가 베이징에서 한동안 체류하고 있을 때 왕푸징, 시단 등 번화가에 피자00와 같은 체인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계 피자 상표인 000 피자도 막 상륙하여 나름대로 선전분투하고 있었다. 배달 서비스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중국에서 가가호호 배달하는 상술은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아직 중국인의 입맛을 파고들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인들의 소득 상승, 서구적 소비에 대한 동경 등이 어우러져 중국인들의 피자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피자뿐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참치회의 맛을 알게 되면서 일본인의 식탁에서 참치 스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스시 또한 중국인들에게 날 생선을 먹는 버릇이 없어 처음에는 고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부론(先富論)에 의해 먼저 부자가 된 중국인들의 소비 생활 변화와 함께 알게 모르게 중국인들 사이에 있는 일본에 대한 선망이 작용해 중국인들이 점차 참치회를 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의 탐식으로 인해 그동안 즐겨 먹던 참치 스시를 못 먹게 된 일본인들이 작금의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피자, 참치에 이어 중국인들은 쇠고기 스테이크의 참맛을 누리고 있다. 중국의 대도시에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가 스테이크 요리를 먹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양고기, 돼지고기가 아닌 쇠고기 스테이크를 즐기는 여피족 같은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다음번에는 더 윤택하고 풍성한 식단을 추구할 것이다.

중국은 1990년대에 원바오(溫飽;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수준) 단계를 졸업했다. 그리고 2020년까지 필요한 물건을 웬만큼 다 갖추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샤오캉(小康; 여유로운 생활 수준) 단계를 지향하고 있다.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추구하는 중국의 실상은 중국인들의 급상승하는 소비수준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이다.

문제는 중국인의 소비상승이 먹거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다. <북경자전거>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자전거는 중국인들에게 분신처럼 애용되던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의 대도시에서 자전거보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있다. 천안문 광장 앞길을 메우던 자전거 파도는 승용차의 그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자동차의 연료인 기름은 다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그 자동차가 운행하면 내뿜는 매연을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인구의 경제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으로서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지척에 두고 있어 경제적으로 호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피자에서 참치, 쇠고기 스테이크로, 자동차 매연으로, 중금속 오염 황사로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구체적인 영향이 다가오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자칫 전지구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보다 앞서간 나라들은 물질위주 과잉소비의 후유증으로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를 겪고 있다. 이들의 고통을 이제 비로소 경제발전의 달콤한 과실을 누리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얘기해봐야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