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한국문화원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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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국문화원을 논한다
  • 김준희
  • 승인 2008.03.2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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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크게 성공한 이유를 어떤 선배는, ‘프랑스 문화원 세대가 심어 준 파리에 대한 일류젼(illusion)의 영향’도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40대 이상 되는 사람들 중 대학 때 프랑스 문화원 지하에서 상영하는 영화 한 편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당시 가장 선호되는 데이트 코스는 프랑스 문화원에서 만나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삼청공원까지 걷는 거라는 걸 어느 수필에서 읽은 적도 있다.

그 정도로 프랑스 문화원이라는 존재가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지적 갈증을 푸는 창구이면서 또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을 파는 아름다운 잡화상 같은 존재였었던 것이다. 각 국이 문화원 설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당시 프랑스 문화원은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곳 L.A에도 당연히 한국문화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럼 우리 문화원은 이곳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문화원이란 말 그대로 한국의 문화 전반을 소개하고 전수하는 국가 홍보기관이다. 한 국가 혹은 민족을 진정으로 복속시키는 길은 무력으로 제압한 뒤 문화로서 흡수를 하는 것이다.

로마가 그토록 오래 세계 국가의 위용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건, 제압한 각 변방을 철저히 로마화하는 작업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키에도 로마식의 콜로세움이 있고, 열주식 기둥의 회랑을 가진 대리석 건축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다. 사람은 터키인들이지만 그들이 누린 문화는 바로 로마식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역시도 원정길에는 꼭 고고학자를 비롯해서 그들 문화의 전령사를 무리에 포함시켜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문화의 전파가 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똑같이 세계제국을 건설했지만 몽고는 이제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바로 칼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LA의 한국문화원의 역할은 크고도 중차대하다. 그들은 현재 어떤 방식으로 한국 문화 전령사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지, 그 현주소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LA한국문화원은 1980년에 설립되어 도서관, 박물관, 전시관, 영화 상영관 등의 기본 시설을 나름대로 충실히 갖추고 있다. 또한 문화콘텐츠 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관련단체도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도서관 서고에는 한국 역사와 문화 등에 관계된 각종 도서 약 2만 3천여 권이 충실하게 수집되어 있어서, 한국에 대한 자료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 제공처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한 약 2천 장이 넘는 한국의 영화 자료 비디오, DVD, CD 등의 영상 자료도 함께 수집되어 있다. 일단 이러한 도서 및 영상 자료만으로도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는 충분하다 하겠다.

또한 한국어 보급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는데, 현지의 한인 2세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상당수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있다. 현재 수강생은 약 250여 명 정도 되는데, 이들 중 한인이 45%이고 나머지 반 이상은 현지 백인들과 아시안, 멕시칸 등이어서, 한국어 국제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외국인 수강생들이 대폭 늘고 있어서 우리의 국력 신장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문화원 내부의 인테리어 역시 한국 문화의 호흡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의 장식과 전통 문양들로 꾸며져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L.A 인근 공립학교 학생들을 초청하여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었고, 인근 주민들이 한국 문화 예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외에 매 년 한국의 전통행사를 함께 전달하고 보급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최근 대보름을 맞아서 ‘윷놀이’, ‘부럼 깨기’, ‘제기차기’ 등의 한국적 전통 문화와 놀이를 준비해 다함께 한국의 전통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었고 한국영화도 일주일에 한번 씩 상영 중에 있어서, 미국 땅에서 한국 문화를 맛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이 모든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화원 측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원 안은 늘 썰렁한 편이어서 좀 더 강력한 유인책이나 홍보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강력한 콘텐츠가 제공되어야 하고 이른바 ‘한류’를 가장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이나 방문객을 막론하고 L.A에 오면 꼭 한 번씩 들러야만 하는 명소가 되도록 좀 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