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통부터 615정신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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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부터 615정신 따라야
  • dongpo
  • 승인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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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에서 있었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해외위원회 회의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붉은 투피스를 입은 작은 체구의 이민자 위원은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았던 ‘평통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림3
“이 자리가 과연 615선언의 정신을 따르는 자리인지, 우리가 과연 남북의 평화와 번영에 헌신한 자들인지 되돌아보자.”
순간, 장내는 박수로 메아리치며 이민자 위원은 잠시 말을 멈춰야 했다. 1천3백여명의 해외 자문위원 중에는 그간 평통의 역할에 대해 회의해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현재 베를린에서 개업의로 일하고 있는 이민자 위원은 그 누구보다도 재야에서 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이다. 그는 이번에 평통위원이 되고 싶어 자원했다.
그가 처음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에서 한통협 청년들을 만나면서다. 청년들은 한시간 거리인 고국을 들어갈 수 없다며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실감한 것이다.
범민련이 결성되자 그는 윤이상을 의장으로 하는 범민련 해외본부의 수석 부의장을 지냈다. 독일의 외국인 노동자 운동으로 큰 획을 그은 파독 간호사의 영주권 운동, 송두율, 윤이상으로 대표되는 해외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그다. 덕분에 한동안은 그도 아픈 어머니를 두고도 고국에 들어오지 못했었다.
그는 평통의 개혁방안을 제시하면서 “명망가 위주가 아닌 정부에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실무능력자, 동포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표성을 확보한 자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들은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평통자문회의를 결성하면서 해외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했다. 일부에서는 평통을 ‘정부의 들러리, 반공단체’로 인식해왔다.
그는 또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대화를 통해 동포사회를 화합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통위원 2년의 임기동안 구체적인 활동없이 회의할 때 정부의 예산과 시간을 들여 모이게 되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또한 남북의 갈라짐은 해외 동포사회에서도 동포들끼리 등을 돌리는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해온 그에게 그것은 누구보다도 가슴아픈 일이었다.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을 끌어 안아야 한다. 독일이 통일을 위해 동독에 얼마나 줬는지 아나? 극우주의자도 쏟아부었다. 한미공조 말은 좋지만 주변강대국은 통일을 원치 않는다. 소수민족인 우리가 살아남는 것은 민족주의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틈이 날때마다 각 지역의 위원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와 의견을 나누었다. 그는 발표를 하며 다소 과격하다면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날 회의에서 그만큼 인기를 끈 위원은 없었다.
한국학을 연구한 독일인 남편과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한국말을 배운 아이를 둔 독일의 한국인 의사, 그는 평통 기간 내내 많은 사람에게 ‘평화통일’이라는 백신으로 평통의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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