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명박 정권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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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명박 정권의 모순
  • 이종태
  • 승인 2008.02.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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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이명박 정부’(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정책 대안들은 일종의 퍼즐 조각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이 퍼즐은 완성되기 어렵다. 퍼즐 조각들이 서로 상충되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금융화 정책을 한층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는 한국의 ‘금융 허브화’를 노무현 정부에 이어 다시 공공연히 내걸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이명박은 명백한 노무현의 계승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맞추어지지 않는 퍼즐 조각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명박 인수위는 친(親)재벌가문적인(‘친기업’이 아니라 ‘친재벌가문’이다) 정책을 여러 가지 선보이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업 경영권 보호이다. 그런데 이 경영권 보호는 금융허브 정책 하에서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정책이다.

경영권 보호는 국내 기간산업에 대해 기업의 매매를 어렵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금융허브는 없다. 금융허브에서 기업의 매매가 규제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책상의 모순은 이명박 정권 구성의 모순(시장주의자 + 포퓰리스트)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책이 바로 ‘금산분리 완화(철폐)’ 정책이다. 왜 그런가?

첫째,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의 완화나 철폐는 시장주의라기보다 반(反)시장주의에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시장은 경제주체들 간의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은 대출을 희망하는 기업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어느 정도 규모의 대출 상품을 어떤 가격(이자)으로 판매하면(빌려주면) 미래의 시장 상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은행은 감시자, 기업은 피감시자로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은행 소유처럼 은행과 기업이 한 덩어리로 묶이는 상황은, 적어도 시장주의의 시각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금산분리가 철폐되면 은행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연고에 따라 대출하고 그 가격(이자)도 낮게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시장에서의 가격 메커니즘이 왜곡되는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산분리 철폐는 반시장주의적인 주장이다. 자칭 시장주의자들이 반시장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금산분리 완화(철폐)는 극단적인 경제력 집중을 유발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력 집중을 유발하는 정책은 반시장주의라고 불러 마땅하다(경제력 집중=독점은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2008년 초 현재, 이미 금산분리가 해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재벌들은 이미 산하에 증권사와 보험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미 제정되었거나 시행 예정인 법률들, 즉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개정 보험업법으로 인해 금산분리 완화는 더욱 심화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는 은행까지 재벌의 손에 맡기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비금융(산업) 기업에다 사실상 은행의 기능을 가진 제2금융권 회사(증권과 보험), 이에 은행까지 거느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초강력 산업복합체의 탄생이 기대되고 있다.

셋째,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현재의 ‘금산분리 완화’ 논의는 튼실한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재벌 주도의 금융화’가 ‘보수정권-재벌’ 간의 정치적 타협을 매개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경영권 보호, 출자총액제 폐지 등의 선물을 재벌에게 건네고, 재벌은 일정한 규모로 국내 투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증가된 투자는 금융화의 부작용을 극복할 성질의 것도 아니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더욱이 금산분리 완화로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등 잠재적인 대형 인수합병(M&A) 매물의 거래에 재벌을 끼워 넣으려는 의도가 존재한다면, 이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된다.

금융 공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해 중소기업, 서민 등의 금융 소외자들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금산분리 철폐 내지 완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재벌이 은행의 대주주가 된다고 해도 금융감독 체계만 잘 만들어내면 그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하려는 목적이 고작 배당금이나 타려는 것일까. 사상 초유의 강력한 산업-금융 독점체가 나타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