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째즈가수 정금화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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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째즈가수 정금화씨 별세
  • 황성봉 재외기자
  • 승인 2008.02.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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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무대에서 한국음악의 세계화에 공헌

유럽무대에서 맹활약을 해오던 째즈 가수 정금화(50)씨의 장례식이 지난 4일 남부독일 뮌헨의 동부묘지 영결식장에서 가족과 친지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정금화씨는 2007년 5월 대장암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그 동안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투병생활을 해오던 중 지난 1월 29일 운명을 달리했다.

故 정금화씨와 「김정 앙상블」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세르게이 디도렌코(바이올린)와 오이겐 바지얀(첼로), 팬더로즈, 슈텔레(전자악기)의 연주와 마지막 고인과 작별을 하며 함께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면서 그녀가 바로 무대위로 나올 것만 같았다고 한 참석자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냈다.

가까운 친구였던 Hr. Furth 씨가 간단하게 고인의 경력과 그룹 활동 등을 소개했고 옆에서는 고인의 사진과 음악회들을 모아 만들어진 영상물이 상영됐다.

고인이 살던 Donaueschingen에서는 음악활동을 함께 했던 독일인 15여명이 버스를 대절해 장례식에 참석했고, 주 프랑크프르트 총영사관( 이충석 총영사)에서도 "뛰어난 음악인으로서 동포사회에 사랑과 기쁨을 선사했던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께 위로의 인사" 를 전하는 조의문을 전해왔다.

고인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 직접 만든 곡 'My little Joori" 을 외롭게 남겨진 딸 주리씨(26)가 직접 불렀고, 장례식장 안은 잔잔한 현악기의 울림과 사랑하는 정금화씨를 작별하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으로 무거움을 한층 더했다.

고인은 지난 1978년 제1회 동양방송(TBC) 해변 가요제에서 보컬그룹 '징검다리" 에서 왕영은씨와 '여름" 을 불러 대상을 받으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결혼 후 딸과 가정에만 묻혀 10여년간 음악활동을 중지했던 고인은 음악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으로 당시 한국째즈의 대부로 불리는 이판근선생을 찾아가 사사하고 대학로의 째즈클럽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91년 독일행을 결심하고 한국과는 전혀 다른 세계, 숲으로만 둘러싸인 독일 남서부 Schwarzwald의 작은 도시Donaueschingen 에서 음악과 자연에 묻혀 살았다. 당시 음악에만 몰두했던 시절을 그녀는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그곳에서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아리랑" 을 가르쳐 주면서 그녀는 한국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3년 뮌헨으로 나와 41세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뮌헨 뉴 째즈스쿨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정씨는 2001년 서로 마음이 맞고 음악을 사랑하는 독일 여성 4명과 아카펠라 그룹 '레이디스 토크" 를 결성해 그들에게 한국노래를 부르는데 동의하게 이끌어 냈고 이를 과감하게 무대에 올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 유럽인들에게 한국인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소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고인은 '노란사쓰 입은 사나이', '꿈꾸는 백마강', '뭉게 구름', '아침 이슬', '아리랑' 등을 째즈스타일로 편곡해 대중들이 비록 가사는 이해 못하지만 음악으로 한국과 유럽을, 고전과 현대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했다.

클래식과 째즈의 조화를 표방하는 Hook on Jazz 로 유럽에서 활동을 해왔던 고인은 지난 2001년부터 250여회의 라이브무대를 가지면서 고향인 한국과의 끈을 끊지 않고 내한공연을 해와 한국의 음악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2004년 예술의 전당에서 가진 내한공연에서 우리 가요와 비틀스 히트곡 등을 조합시켜 아카펠라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이를 계기로 2004년 KBS 한민족리포트 에서 외국에서 힘들게 살면서 재즈가수로 성공하기까지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2007년 3월 24일에는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가수 노사연, 이정식씨와 함께 '2007 명품콘서트" 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지난 4월 독일의 전 수도인 Bonn, 국회의사당 콘서트홀에서 초청연주를 가져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들의 음악은 단순한 째즈가 아니라 Hook on Jazz 이며 이는 클래식이라는 그릇에 째즈를 담고 전자음악으로 양념을 친 새로운 시대의 월드 뮤직이다. 정금화 앙상블은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민족, 다양한 문화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창조해낸다" 고 현지 보도매체들이 극찬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독일 이름을 '김정" 으로 불러 독일에서는 'Kim Chong Trio" 로도 크게 알려졌고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에 참가, 한국노래들을 불러주었다.

음악의 글로벌을 추구했던 정금화, 한국과 독일을 연결시키고 그래서 한국을 유럽에 소개시키며 '아리랑'과 '꿈꾸는 백마강'을 베토벤과 비발디와 째즈음악으로 조합시켰던 정금화, 끝까지 암과 투쟁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끈질긴 성품과 아름다운 목소리, 힘들었던 8개월간의 투병 중에도 남을 위했던 착한 성품을 지닌 정금화,

아름다운 투쟁으로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영원한 도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정금화.. 이제 그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음악세계와 업적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