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제는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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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는 때가 되었다
  • 김천주 캔버라한인회
  • 승인 2008.01.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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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라에서 보내는 편지

해질 무렵이 되면, 나는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순돌 이와 마누카 산책로를 따라 길을 나선다. 하루 중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이며, 그런 만큼 많은 생각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활동을 구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과 같은 연말 연시가 되면, 개인적인 사업이나 활동과 함께 우리 한인사회가 추진해 봄직한 계획들이 순간 순간 떠오르곤 한다.

캔버라의 마누카 산책로는 번화한 쇼핑 타운을 끼고 있어 항상 활달하고 생기에 넘쳐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면 멀리 호주 국회의사당의 웅장한 자태를 만나게 된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사당을 마주칠 때마다, 이제는 우리가 저 안에 입성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호주 한인 이민사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호주에 한인이 이민을 온 지 50년이 되었고, 한인들이 대거 입국한 시점도 40년이 지나고 있다

그런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호주 한인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며 무엇보다도, 이민 1세대의 뒤를 이어 이민 1.5~2세대들이 한인사회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들로 인해 한인들의 직업군도 크게 다양화되고 있으며 호주사회 곳곳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 한인들의 진출이 더딘 곳이 바로 정치 분야이다.

사실, 호주와 같은 대표적인 이민국가에서 소수민족 커뮤니티의 공익을 위한 기반은 정치적 파워를 구축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 정치적 힘을 갖는 일은 비단 정치 인사를 배출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인사회 각계에서는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 인사들과의 인맥을 좀 더 강화하고 한인사회 전체가 이를 효율적으로 조직화 하는 것도 한인사회의 파워를 길러나가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인사회 2세 그룹 또는 전문가들 가운데 정계 진출을 원하는 예비정치인 그룹을 만들고, 한인사회가 이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기존의 정계 인맥들과 연계시켜 준다면 한인사회에서 정치인을 배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있다.

현재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지역에서 권기범씨가 메이저 정당인 호주 노동당 평당원으로 입당한 뒤, 당의 공천을 받아 시 의회에 진출한 것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그는 혼자의 힘으로 일궈냈지만 후에 한인사회에서 후원회가 발족되어 그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기존 정계 인사들이 대부분 평 당원으로 입당해 시의원을 거쳐 주 의회, 연방으로 진출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권씨의 경우 개인적인 소신으로 시작됐지만, 처음부터 한인사회가 조직적인 활동으로 정계 인사 배출을 시도했다면 그의 행보는 더 빨라졌을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라도 이런 활동들이 조직화하고 확대해 나간다면, 한인 커뮤니티도 머지 않아 주 의회는 물론 연방의회 진출 자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런 계획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인사회 전체의 인식과 이를 위한 실천이다. 좀 냉정한 시각으로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뒤돌아본다면, 한인사회 스스로가 그런 정치적 역량을 훼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류사회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인맥을 자기만의 라인으로 하여 한인사회 전체로 향하는 데 있어 스스로 벽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특정 집단, 특정 그룹의 정치적 역량은 결국 얼마만큼의 표밭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적은 유권자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특정 인사의 당락을 결정지을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기에 한인사회가 조금만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스스로의 역량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한인사회 각 단체들이 본연의 목적과 취지가 있겠지만 진정 한인사회 전체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고민을 통합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체들의 그런 바람직한 행동들은 교민사회 개개인에게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올해는 호주 한인 이민 한 세기의 중간 지점을 넘어서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뭔가 새로운 변화, 새로운 비전을 꿈꿔볼 일이다.

막연히 한 해를 생각하며 올 한 해의 일에만 전념한다면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들은 결코 실행해 나갈 수 없다. 올해에는 진정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장기적으로는 개개인의 삶의 편의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라도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