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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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동행
  • 오재범 기자
  • 승인 2007.11.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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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현(6.15공동선언실천 미주서부위원회 공동위원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같은 길을 가는 동행을 여러 차례 만난다. 한평생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이가 가장 쉽게 떠오르는 동행이지만, 같은 학교에서 3년 또는 4년 동안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거나 신앙의 공동체에서 만난 형제들 사이도 두고 두고 동행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 가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각박한 현대인의 생활인지라 요즘 들어 부쩍 동행의 의미가 강조되는 가운데 더 나아가 아름다운 동행이니, 행복한 동행이니 하는 말들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지난 주에는 남북정상선언과 관련해 앞으로 미주동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토의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다녀왔다. 거기에서 발견했던 일은 미국의 저편에 살고 있으면서 조국에 대해 같은 열정과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같은 시대 동행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혼자보다는 둘이서, 둘보다는 셋이서 헤쳐 나갈 때 더욱 좋은 결과를 볼 수 있기에 '평화로 가는 동행'은 장차 더욱 확대되고 보편화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평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은 소수의 운동가 중심으로 과격한 주장이나 펴고, 데모나 벌이고 하던 시절의 통일운동이 아니라 모든 동포들을 대상으로 미국이나 일본 등 국제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과 분단 60여년 만에 한반도 통일정세가 가장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일러주면서 대중적인 호응을 넓혀가야 된다는 것이다.

흔히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 즉 반전 반핵의 정도로만 이해해 왔지만 동양에서는 일찍이 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곳에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밥이 있다는 사상을 펴 왔는데 이는 서양에서 예수가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밥을 나누어 주는 일을 우선했다는 '예수의 밥상 공동체론'과도 일치 하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선언의 특징도 꼭 평화를 위해서 만이 아니라 평화와 함께 경제와 군사문제도 함께 해결하려는 일석삼조의 선순환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경제라는 용어도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대선주자들 사이에 평화담론이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본다. 전쟁을 원한다고 겉으로야 말하지 않겠지만 과연 누구의 평화론에 진정성이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때로 우리는 지금 누구와 함께 동행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동행할 만한 사람과 가고 있으며 갈 만한 곳으로 가고 있다면 비록 그 여정이 힘들더라도 기쁘게 걸어 갈수가 있는 것이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청년은 곁에 예수가 동행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절망과 실의에 빠졌었지만, 민족의 명운이 걸린 이일에 확신을 갖고 '평화로 가는 동행'에 함께 나설 때 그것은 분명 어느 것 보다도 아름다운 동행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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