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상태바
죽은 이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 김종수
  • 승인 2007.10.18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종수(아힘나운동본부 상임이사)
1923년 9월 일본 간토(關東)지방에서 일어난 강도 7.9의 지진은 도쿄 시내를 불바다의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지진 발생 하루가 지나면서 내란․선동을 부추기는 무리들이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니더니 급기야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불령선인(不逞鮮人 - 불평을 품고 반역을 획책하는 괘씸한 조선인이란 뜻)들이 지진으로 혼란한 틈을 타 여염집을 약탈하고 화약공장에 불을 질렀으며, 부녀자를 집단으로 윤간하는가 하면 동네사람들이 마시는 물에 독약을 풀어 넣고 있다는 등의 그야말로 악의에 찬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보도됐다.

이러한 유언비어를 일본인들은 사실로 받아들였고, 일본 곳곳에서 재일동포 6,661명의 귀한 목숨이 닥치는 대로 살해되는 비극의 단초가 됐다.

우리는 서글프고 한스럽지만 1923년 9월 1일부터 벌어졌던 이 엄청난 살육의 현장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은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는 살아있는 자들의 인권 역시도 지켜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는 이 엄청난 학살사건에 대하여 여전히 올바른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사과한 일도 없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제 나라 백성이 타국에서 당한 학살에 대하여 사건 발생 84년, 해방을 맞이한 지 62년이 지나도록 진실규명 및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어떤 일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요구하거나 촉구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1년간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운동본부’는 일본의 NPO법인 AhimnaPeaceBuilders, 아시아하우스와 공동으로 ‘1923년 간토조선인 학살관련 그림․사진․보도자료 전시회’, ‘1923년 간토조선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제 심포지움’ 등의 행사와 함께 호소문에 동참하는 100인 서명을 받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행사도 행사지만 이 행사를 통해 ‘1923년 간토 조선인 학살사건’을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을 모아나가고 조직하는 일은 더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지난 5월, 필자는 일본의 사회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의회는 특별 법안을 만들어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일에 착수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일본의 총리에게는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일과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하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어려웠지만, 일본 평화 운동가들의 합의는 정말 철저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인 100명의 이름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호소문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이 행동에 90여명의 일본인과 110여명의 한국인이 참여했다.

단순한 지지서명이 아니라 동의하고 참여하는 뜻으로 1구좌 1만원 이상의 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200명 가까이 되었다는 것에 우리들 스스로도 놀랐다.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 9월에는 유기홍 의원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시내 곳곳에서 관련행사를 펼쳤다. 유 의원은 지난 9월 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이번 회기에 특별법안을 만들어 해당 위원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동안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학자들은 진상조사를 위해 애써왔고, 화가들은 화폭에 자신의 기억을 남겼으며, 사진작가들은 필름에 학살의 현장을 담았다. 9월 행사 이후 행사 참가자들은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금 본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리고, 일본과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진상규명 노력과 사죄의 활동이 이어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및 올바른 역사청산과 가해자들의 사죄로 이어져야 할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이주동포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일본의 새로운 총리는 관동 조선인학살 사건을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실질적인 노력으로 당시 1923년에 일어났던 조선인 집단 살해사건에 관한 모든 재판 기록들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물론 조선인 집단살해 후 암매장한 유골들을 찾아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