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그리운 고향 정취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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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그리운 고향 정취 맛본다
  • 황성봉 재외기자
  • 승인 2007.07.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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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청정채소와 넉넉한 나눔의 아헨자연농장
농촌에 시계가 흔하지 않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농촌의 우리 어머니들은 해질 무렵 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저녁밥을 짓기 위해 이남박에 물을 붓고 보리쌀을 담갔다. 그 무렵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마당에 분꽃이 피어나는 초여름 저녁나절이면 "봉순아, 분꽃 피었다. 보리쌀 담가라" 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올 것이다.

재독동포 대부분은 고향 떠나 타국에서 산지 어언 40년, 육순의 고개를 넘어 고희를 맞이하거나 바라보고 있다. '여우도 죽을 때에는 고향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듯이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더욱 새록새록 샘솟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록 고향엔 가지 못해도 고향의 정취를 담뿍 맛볼 수 있는 곳이 중부독일 아헨근교에 자리잡고 있다.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풀과 함께 자라는 환경친화 농법으로 무공해 청정채소를 재배하여 전 유럽에 공급하는 아헨자연농장이 바로 그 곳이다.

"허허, 5천평의 밭에 알타리무를 심었는데, 싹이 트기 전에 풀이 먼저 자라는 바람에 모두 죽고 말았지. 풀보다 무가 먼저 자라야 하는 건데…"  아헨자연농장의 밭에서는 채소가 풀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아 상품이 된다. 참외도 올해에는 이 생존경쟁에서 참패하여 한여름 참외를 찾는 동포들에게 자연농장의 참외를 공급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자연농장의 장광흥 사장은, "처음부터 무공해 청정채소를 공급하겠다고 동포사회에 약속했으니 끝까지 지켜야 한다. 알타리무나 오이가 다른 농가생산품에 비해 흠집이 있고 모양이 안 좋은 까닭은 채소들이 농약과 화학비료의 도움 없이 자연과 싸우며 자라난 영광의 상처라고 보아주면 고맙겠다"면서 자칫 크게 손해 볼 수도 있는 친환경 유기농법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새로 개발한 신품종 고추씨앗을 파종했는데 진딧물의 공격으로 절반은 일찍 뽑아 불태워야 하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진딧물 제거 약품을 쓰라'는 권고에는 질색을 하며 거절한다.

"사람이 먹는 채소에 어떻게 벌레나 풀을 죽이는 독한 약품을 쓸 수가 있느냐"면서 "내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청정한 채소를 재배한다"는 초심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청정채소의 소문 덕인지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등지에서도 주문이 쇄도하여 미쳐 공급을 다 하지 못하고 있으며, 멀리 파리와 브뤼쎌, 룩셈부르크, 암스텔담까지 아헨자연농장의 채소가 공급되고 있다.

아헨자연농장의 안주인 박봉순 여사는 그토록 힘든 농사에 허리를 펴지 못하면서도 늘 만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고향집, 친정집 찾아오듯이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교민들에게 자연농장의 거실과 부엌은 늘 개방되어 있다. 함께 밥하고 호박된장찌개 끓이며, 닭장에서 금방 꺼내온 따끈따끈한 달걀로 찜을 만들고 상추쌈 곁들여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 상을 차린다.

분꽃·백일홍·봉선화·코스모스 만발한 꽃밭을 바라보며 밥을 먹노라면 어릴 적 고향집에 돌아온 느낌 그대로다. 안주인은 고향짐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의 심성 그대로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아들·딸들의 짐을 챙기듯이 오이·호박이며 가지가지 푸성귀들을 담은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꾸리기에 바쁘다. 그러면서도 사람 좋아하는 안주인은 "사람 사는 재미가 이렇게 오가는 정 아니겄소 잉 ? " 하면서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오이와 호박이 담긴 큼직한 보따리 두 개를 취재자에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