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많다'호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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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많다'호의 미스터리
  • 정길화
  • 승인 2007.06.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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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문화방송 PD, 본지 칼럼니스트)
지난 5월 12일 새벽 3시5분(현지시각. 한국시각은 4시5분)께 중국 보하이(渤海)만 해역에서 제주 선적 3천800t급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배 4천t급 화물선 ‘진성(金盛)호’와 충돌, 침몰하면서 한국인 7명을 포함한 선원 16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먼저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한국 언론은 사건 직후부터 숨가쁘게 각종 뉴스를 토해냈다. ‘진성호’의 '뺑소니' 의혹을 필두로 '늑장신고'와 '발뺌' 비난이 그것이다. 한국 언론의 각종 의혹제기에 유감을 표명하던 중국 당국도 마침내 사고가 난지 4일이 지난 후 “마음 아프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상 사고가 나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예외였다며 ‘진성호’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보도만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수색 과정에서 항공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조난신호자동발신장치(EPIRB) 등이 나오면 충돌에서 침몰까지의 경위도 확실히 파악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시신도 다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 외교부가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고 말하며 신중을 견지하는 것은 일단은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사건 직후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한국 측도 잘한 것이 별로 없다. 지각수습에 늑장대응이다. 사고발생 후 21시간 만에야 대책본부가 꾸려진 것은 단적인 예다.

무엇보다‘진성호’가 사고 이후 지연 신고를 한 것은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정녕 사고 당일 짙은 해무 속에 “배가 부딪친 것을 몰랐다가 항구에 도착해 배의 파손을 목격한 뒤에야 충돌사실을 알고 해사국에 신고”했던 것일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옌타이 해사국이 신고를 받은 시간은 사고 뒤 7시간이 지난 12일 오전 11시40분, ‘진성호’의 다롄항 입항 시간은 오후 2시50분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입항 뒤 선체의 파손을 발견한 뒤 신고했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서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또 사고발생시간인 12일 새벽 3시8분부터 다롄항에 입항한 이후 오후 2시50분까지 12시간 동안 진성호의 행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사고지점은 다롄항으로부터 통상 3~4시간 걸린다는데, 진성호가 8~9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투성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선원들의 말이 액면 그대로 맞을 수도 있다. 경미한 사고인줄 알았다가 날이 밝고 보니 엄청난 대형 참사가 터진 것을 알고 놀란 마음에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충돌 과정에 ‘진성호’에 어떤 과실이 있어 이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래도 자신들이 돌보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빈사의 심야해상조난자를 두고 가버린 저간의 행위를 어림하기는 쉽지 않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했겠느냐...’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 때문이다.

결말이 어떻게 나더라도 이를 중국이나 중국인 전체로 섣불리 확대해석할 일은 아니다. 그래 봤자 13억 인구에 영점 몇 퍼센트도 안 되는 몇 사람의 ‘진성호’ 선원이다. 필자가 일찍이 말했듯 ‘중국은..’ 혹은 ‘중국인은...’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은 뒤에 어떻게 서술부가 오더라도 확률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며, 또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쉬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틀린 말이기도 하다.(졸저 <3인3색 중국기> 서문)

그래도 제비 한 마리로 봄이 왔음을 알 사람은 안다. 이번 ‘진성호’ 선원들의 행태가 개혁개방과 선부론 이후 시장경제를 발판으로 대국굴기(大國崛起)로 질주하는 작금의 중국에서 나타나는 멘탈리티의 어떤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러고 보니 ‘돈이 많다, 황금이 많다’는 ‘진성호(金盛號)’의 이름은 현대 중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강하게 시사하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골든로즈호’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의 잃어버린 장밋빛 꿈인가?

이미 추진동력에 가속도가 붙은 거대 ‘중국호’는 항로에 장애물이 있으면 치고받아버리며 그 와중에 누가 조난당하더라도 알 바 없이 제갈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심지어 사고 직후 중국언론에 "골든로즈호에 과실이 있다."는 식으로 피해자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도대체 중국에 양식과 지성이 있는지를 의심할 정도였다.

자못 염려스럽고 불편해진다. 개도국에서 벗어나 300년 전의 영화를 되찾으려는 중국은 다른 항로를 다 두고 천민자본주의와 졸부근성의 길로 가려는 것인가. 우리는 '골든로즈호를 위한 애도사'를 읽기 전에 ‘토(討)진성호격문(檄文)’을 먼저 터뜨릴 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