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라는 동아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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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라는 동아리의 힘을 믿는다
  • 이문형
  • 승인 2007.06.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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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형(전 워싱턴문인회장, 현 정신대문제워싱턴지역범동포대책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3월 6일 이래 정신대문제 상정법안 통과를 위한 워싱턴지역 범 동포대책위원회의(이하 워싱턴지역범대위)활동은 전반적으로 일사분란한 집중력을 보였다 하겠다. 물론 그 내면 깊은 곳까지를 들여다 본다면 일사분란이라 표현하기에는 그리 적절치 못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 60대 이상의 세대와 4, 50대, 그리고 30대 이상의 세대와 30대 이하 세대의 38여 단체가 참여하는 단체가 된데다가 또 40여 소수민족 단체들이 직간접으로 지원 및 참여를 해오고 있기때문에 각각의 피치 못할 사정이 끊이질 않고, 어울려 뜻을 하나로 모아가는 그 과정이 순탄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또한 다른단체에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본 워싱턴지역 범대위의 실행위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끔은 소속단체의 긴급사항이나 정서로 인해 본 범대위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의 진행 속도나 처리 능력에 속도감이 떨어지는 현상 또한 피할 길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편 로비데이를 정해 의원회관의 의원사무실을 방문하고, 정신대문제의 자료제공과 공동발의에 서명하도록 설득하는작업을 여섯차례나 해 오면서 37명, 49명, 67명, 80명, 90명이다가 100명을 넘어 128명이더니, 드디어 미 하원의원 131 명이 공동 발의자가 되었으니 적지 않은 결실이 아닌가.

오늘의 이 결과는 지난 3월 6일 출대식에서 보여준 ‘우리’라는 하나의 띄, 또는 동아리 의식은나름대로의 정의감과 애국심의 발원이 되었고, 따라서 연대감 내지는 소속감을 가지고 본 문제에 접근하도록 하는 데까지 작용하게 되었다.

우리의 할머니들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내용을 알아가면서 이 일은 더이상 과거로 묶어 묻어 둘 수 없는, 바로 오늘 우리들의 아픔으로 다가왔고 피해 할머니들의 생전에 해결 해야 할 절박한 사안으로 부각되었다. 15년 전 이 때문에 뛰어들면서는 스스로 혼란에 빠진 적도 있었고, 주위로부터 심심치 않은 중단 권유를 받은 적이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냉담한 반응은 물론 비난도 서슴치 않는 분들 앞에서 마음 아팠던 적도 많았었다. 나에 대한 비난이라면 견딜만도 한데 잘못 알고 있는 자신들의 지식을 내세워 피해 할머니들을 매도하는 언사에는 차라리 분노마저 일었었다.

돈을 받고 위안부 노릇을 하였다고 믿는 이들이 백에 하나 쯤은 있기에 여기 사료를 인용해 진실을 밝혀 본다.
-1908년 8월 22일 조선 전역에 일본인 작부 2천914명(통감부 통계연감)이었고,이후 해마다 숫자가 늘어나면 서공창제도로 급속히 발전 했으며,1918년에는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 7개 단 중 1할이 성병에 감염.
-1925년 식민지에서 아편, 매독, 유곽 발전정책 펴 나감.
-1930년 조선민족 반도 밖으로 분산조치, 만주로의 대규모 이민정책 실시.
-1931년 만주철도폭파사건으로 관동군의 전투가 개시되었고, 일본 본토의 경제공항으로 매춘업자들이 만주로 진출.
-조선 농촌지역에 여공모집(위안부 모집을 가장한 것) 광고가 나붙음.
-1932년 1월 상해사변이 일어났고, 3월에는 일본의 일방적인 만주국 건설 선언이었으며, 관동군 기병 25연대에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인솔돼 옴.
-1935년 3월 공창제도 전면 폐지
-1938년 1월 상해 군공로 근처의 양가택 육군오락소 개설, 종군위안소 1호 탄생(센다가꾸오의 견해). 2월 각 군 주둔지로 위안소가 확산 됨(상해, 항주, 상주, 남경 등) 이 시기부터 당당히 군대를 배경삼아 위안부 모집 시작.
...이하 생략.


1997년 윌리암 리핀스키에 의해서 처음 상정되기 시작한 본 법안이 2000년 레인 에반스 의원으로 넘어가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상정, 기각이 이어오다가 금년에는 마이크 혼다의원에 의해 상정된 이 H.R 121 법안의 통과를 위한 본 범대위가 출범한 이래 미 전역에서 19개의 범대위가 발족되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반해 주미 일본대 사를 비롯 일본에서 파견돼 온 관료들, 그리고 로비스트들의 집중 로비가 대단하다.

이에 잠잠한 본국 정부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크기도 하지만 차라리 어설픈 언행으로 역풍을 맞기보다 인류의 인권과, 인륜을 거스른 여성의 성노예문제로 부각시켜 온, 세계의 인권과 일본의 전쟁범죄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우리’라는 동아리의 힘이 돈과 권력과 정치적 술수에 꺽이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줌으
로써 세계의 질서와 사회정의의 함수를 풀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