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옷과 글로벌 스탠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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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옷과 글로벌 스탠더드
  • 홍석화 토종연구가
  • 승인 2007.05.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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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문화칼럼
사람은 언제부터 옷을 입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열대지방의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의 원주민들은 ‘아랫도리’만 걸친 채 ‘아무 불편 없이’ 생생하게 살아가고들 있습니다만, 만약에 그들이 세계의 ‘대도시 나들이’를 하러 나와서 현대 도시인들의 옷차림을 살펴본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아이쿠 답답하게스리 웬 거추장스러운 걸 저렇게 많이 걸쳤디야?” “신발이며, 모자며, 넥타이며ㆍㆍㆍ 아니! 저 귀걸이들은 우리가 즐겨 걸치는 ‘목걸이’를 흉내 낸 것이 분명하네ㆍㆍㆍ” 추측컨대 아마도 그렇게들 얘기하지 않겠나 싶네요.

각설하고, 우리 동포님들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계시는지요. 제 짐작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 버린 ‘구미식’ 스타일의 ‘정장’이나 ‘평상복’을 입고 계시리라 여겨집니다. 설사 이슬람 지역이나 인도 같은 곳에 정착하신지 아주 오래된 분들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더더군다나 우리 겨레의 옷인 한복을 입고 계신 분은 거의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 사람들, 이슬람 사람들, 유태인들이 정녕 한없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지역뿐 아니라, 해외에 나갈 때에도 그네들의 전통복장을 갖춰 입고 다니기를 아주 즐겨합니다. 심지어 UN총회를 비롯한 ‘국제회의장’에서도 떳떳하게 평상시 입던 ‘우리옷’을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선보이더군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국이나 일본, 북한도 마찬가지고요. 자기들의 ‘옷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거나 ‘폐기처분’해 버린 것 같아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시피, 옷은 ‘날씨’를 비롯한 외부(外部)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함이 그 필요성의 시작일터 이지만, 차차 ‘신분’과 ‘미적 감정’의 표현으로 정착되어져 온 것 아니겠습니까?

‘옷’으로 대표되는 우리 몸의 외부적 온갖 ‘꾸밈새’들은 신발, 모자(두발), 목걸이, 귀걸이, 화장, 손톱장식ㆍㆍㆍ 심지어 최근에는 코나 입술 나아가선 배꼽, 가슴에까지 반짝이는 부착물을 달기에까지 이른 것이겠지요.

특히나 ‘여성’들의 옷차림에 관한 ‘무한 탐색(?)’은 이른바 ‘유행’과 ‘패션’이란 고유의 영역까지로 확대되기에 이른 거구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남성도 마찬가지)의 본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꾸밈새의 초점이,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원적인 ‘자기표현 욕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의 시선을 끌려는 욕망, 남성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거죠.

또한 그 극점에, 최근 들어 성행하고 있는 ‘취직 성형 열풍’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옷’과 ‘여성’ 그리고 ‘사회체계’에 대해 명쾌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 대표적인 경우가 독일의 풍속사학자 Eduard Fuchs(에두아르트 푹스)가 아닌가 합니다. ‘푹스’는 이러한 여성들의 ‘옷차림’ 발전사(?)는, 결국 여성들 가운데서도 지극히 작은 부분 - 유한계급만 해방시켰을 뿐이고, 그것도 가사노동에서 벗어나는 정도의 기회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옷’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꼭 ‘입어야 되는’ - 그러니까 개개인의 육신을 보호하는 - 필수품임과 동시에, 한 사회(겨레)의 신분과 인간관계, 정체성을 즉발적으로 나타내주는 상징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한국’도 인도, 이슬람, 유태인들ㆍㆍㆍ 같은 ‘옷의 정체성’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외동포들도 ‘특별한 날’에는 아주 특별한 준비과정을 거쳐, 우리 전통한복을 차려입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실 테지요? 특히나 여성분들 경우에는 폭넓은 소매, 긴치마, 유려한 선과 색으로 상징되는 한복 한 벌 쯤은 소중히 간직하고 계신 경우도 있겠고요.

또 이민 2세나 3세의 ‘돌날’ 선물로, 고국인 한국에다 특별히 부탁해서, 애기들 한복을 입혀보며 가족ㆍ친지들이 즐거워하시는 때도 있겠지요?

이미 고국에서도 그 주된 대중적 흐름을 잃어버린 한복 - 우리옷 -.

동포 여러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먹고 살기’위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허지만, 그 어드메에 살고 계시던, 그 지역, 그 겨레의 전통적 ‘옷차림’에 관심을 좀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들의 오랜 역사적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그네들만의 독창적 정서, 감정, 미감에 흠뻑 젖어서, 거꾸로 그 속에서 우리옷(한복)과 거의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시지는 않겠는지요. 반대로 전혀 다른 이색적이고도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되시는 측면도 있으실테구요ㆍㆍㆍ.

다시 우리옷(한복)으로 돌아와 볼까요. 지금 한국에선 전통적 스타일의 한복을 ‘재창조(?)’한 이른바 ‘생활 한복’이 소솔하게 퍼져나가고 있답니다.

정통적인 한복은, 현대인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소매 품을 대폭 좁히고, 여성들의 치마길이도 조금 짧게 하는 등 다양한 형태와 색감(천연염색 포함)으로 새롭게 다시 만들어 낸 생활한복을 한번쯤 접해보셨는지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 이 생활한복을 입고 떳떳하게 살아가시는 동포 분들이 점점 많아질 때, 우리는 또 한번의 ‘올림픽ㆍ월드컵’을 세계인의 가슴에 심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런지요.

다시 말해 우리들 각자 자기 자신과 2, 3세들의 정서함양과 민족적 정체성을 살려나가는 한 가지 방법임과 동시에, 민간외교 사절 노릇도 톡톡히 해내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효과를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