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천200 미터 막장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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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천200 미터 막장을 다녀와서…
  • 서석훈
  • 승인 2007.05.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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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광산 체험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눈을 뜨니 이른 새벽 5시 30분. 내리는 비 사이로 지저귀는 야릇한 새소리가 무언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색다른 시작을 알리는 듯, 비몽사몽간에 부랴부랴 잠자리를 박차고 외출할 채비를 갖춘다. 오늘은 땅 속 1200m지점으로….

7시 정각 약속 장소 에쎈중앙역에 도착하였다. 태권도 국제심판이며, 에쎈 갈보리교회 총무부장인 백진건 사범의 제안으로 우리는 오늘 재독동포사회의 근간이 된 삶의 현장 독일광산체험을 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오늘 체험에는 이번 광산 견학을 주관하신 백 사범님 부부, 이번 견학을 후원하시는 독일 <우리신문>의 유종헌 발행인, 전 재독한인글뤽아우프 회장 재독한인세계상공인총연합회 유상근 회장, 크레펠트-묀헨글라드바흐극장 하만택 테너가수, 크레펠트-묀헨글라드바흐 한글학교 송은주 교장, 뒤셀도르프대학 경영학 전공 심승보군, Bochum대학교 전자공학 전공 최모세군, 독일 광산협회 부사장을 지내신 Peter Kropf씨 부부 그리고 나, 총 열 한 명이다.

봄비가 부슬부슬, 모처럼의 모임 가운데 설렘과 웃음이 가득하다. 송은주 교장이 준비한 맛있는 바게트가 행복을 더하는 아침, Gelsenkirchen 외곽의 광산을 향해 출발! 30여분의 드라이브 끝에 드디어 도착한 곳은 Bergwerk Lippe!

친절한 독일인 광산 간부 Herr Rosinski, Herr Mackewicz 두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간단한 광산 소개와 안전교육을 받은 후 드디어 지하 1200m 지점 광산 출입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각자 지정된 캐비넷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고 준비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드디어 변신 성공!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얀 작업복에 안전모, 작업화, 장갑, 안전 마스크, 방진안경, 완전히 바뀐 모습 속에 무언가 왠지 모를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드디어 출발! 버스를 타고 탄광이 있는 곳으로 한 10여분 이동 그곳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에 탑승 한 후 8분여를 내려가니 벌써 지하 850m 지점! 새로운 지하세계에 도착. 다시 이동용 인차(人車)에 탑승 5분여를 달리니 드디어 지하 1천m 지점 암흑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졌고 Reviersteiger Herr Baldy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가끔씩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뿌연 연기, 야릇하게 흩날리는 먼지, 질척거리는 바닥, 거기다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같은 석탄 구르는 울림은 공포감마저 가져다준다. 갱도를 따라 1천200m의 도보 이동이 있은 후 드디어 우리는 막장 입구에 당도하였다. 막장에 들어서는 순간 숨막히는 습도와 열기가 얼굴을 때린다.

더불어 시커먼 먼지가 눈을 가려 한 발 앞도 분간하기 힘들게 한다. 바닥은 질척거려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Herr Baldy가 뿌연 습기가 가득한 방진안경을 벗어 습기를 닦아 꼭 착용하라고 소리친다. 막장에 들어서서 20m 정도 지나 옆을 보니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옮겨지는 석탄이 가득하다. 드릴로 석탄 덩어리에 구멍을 뚫는 모습, 구멍을 뚫은 다음에는 폭약을 넣고 폭발작업을 하는 전형적인 광산의 모습은 이미 오래 전 옛날이야기.

우리 눈앞에는 시가 300만 유로의 최신식 채탄기계가 일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벽의 석탄을 깎아내기 시작한다. 깎여 나오는 석탄의 먼지가 우리의 시야를 괴롭힐 새라 동시에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이 먼지를 완전히 제거한다. 역시 최신식 기계의 최고의 테크닉! 고도의 테크닉의 위용 앞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지는 건 왜일까?

지금은 최신식 기계가 석탄을 깎아 나르지만 당시에는 광부들이 직접 무거운 기계를 벽에 대고 일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석탄을 컨베이어벨트로 나르지만 당시에는 질통을 지고 날랐을 것이다. 요즘은 가벼운 전등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무거운 배터리 전등을 허리에 차고 일했을 것이다. 작업복이며 안전도구 등 근로조건 또한 지금과는 천양지차였을 것이다.

옆에서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백진건 사범님과 유상근 전 재독한인세계상공인연합회 회장님의 말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3·40년 전에는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갱도 속에서 석탄을 캐내어야 하고 이것도 모자라 숨이 턱턱 막히는 증기사우나 속 같은 습도,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석탄 먼지, 60킬로가 넘는 쇠동발을 나르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모습을 어떻게 느낌으로라도 느낄 수 있겠는가?

막장을 경험해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이 천국처럼 느껴진다더니, 처음 들어올 땐 그저 지저분하고 먼지 많은 갱도였지만 이제 막장을 나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려니 떠나기가 아쉬움은 왜일까? 마지막 승강기를 타고 지상에서 푸른 나무와 하늘을 보았을 때의 감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선함이다.

바로 초장 위의 푸른 하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닐까? 모든 순서를 마치고 막상 옷을 갈아입으려니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입고 벗은 작업복에 묻은 땀은 간직할 수만 있다면 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힘든 일이라 그런지 배도 빨리 고파졌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스프와 빵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반나절의 짧은 광산 체험을 하고서 광산이 이렇더라 저렇더라 구구절절이 아는 체하지는 않겠다. 다만, 사적인 고백을 한 가지 하고자한다. 사실 광산에 머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감격스러웠고, 고마웠다. 부모님 세대의 피땀어린 노동과 노력의 대가로 오늘날 우리들이 있고 이곳 독일에서 풍요로운 환경 가운데 유학을 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로 다짐한다. 삶이 풍요롭다고 삶의 뿌리와 근본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참된 공부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일 유학과 광산체험! 독일 유학을 하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광산체험을 마친 후에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승보 학생은 "3시간 남짓되는 체험에서도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어오는데 석탄가루먼지, 높은 온도, 습도 속에서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독일에서 태어난 2세 최모세 학생은 "몇 시간 동안 갔다 왔는데도 입안에서 석탄가루가 가득한 것 같은데,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과 장비로 예전에 광부들께서는 어떻게 일을 하셨을까? 그리고 폐도 안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독일 크레펠트-묀헨글라드하흐 극장에서 일하고 있는 테너 하만택씨는 "향상된 국가 위상으로 우리가 세계무대에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예전에 숨막히는 고통과 힘든 것을 이겨낸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노고의 대가라 생각하고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크레펠트-묀헨글라드바흐 한글학교 송교장 " 부모님들의 이러한 수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의 2세대들에게 체험 기회를 마련하여서 우리 부모님 세대를 이해할 수 있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만리 타지 광산에서 고생하고 수고하신 부모님 세대의 노고에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남몰래 피땀 흘려 수고하신 어른들의 탄식과 고백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늙은 광부의 노래'에 담겨진 어른들의 삶의 고백이 부모님 세대와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우리 젊은 세대간의 세월의 간극을 메워주길 바랄 뿐이다.

나 태어난 이 광산에 광부가 되어 탄 캐고 동발 맨 지 어언 30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광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광부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 청춘! <늙은 광부의 노래 중>

고맙습니다! 지하 탄광 속에서 고생하신 모든 분들. 이젠 광산 속에서가 아닌 지상 위에서 정말 Glueck auf!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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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훈 (Bochum대학교 신학부 재학, 독일학술진흥원 범문화생명윤리연구소 연구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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