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파동 이후 중국에서 더 대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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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파동 이후 중국에서 더 대접받는다"
  • 강국진
  • 승인 200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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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사스(SARS)'가 중국을 공포로 몰아 넣을 때 이훈복(58) 재중국한국인회 회장은 "중국에 머물렀지만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인회에서는 비상체계를 구축했고 수천개가 넘는 체온계를 사서 교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선풍기 2백대를 중국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이제 결실을 얻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도 한국인회에 감사장을 주었고 공무원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우호적으로 변했다. 특히 "김치가 엄청나게 인기를 얻고 있는 걸 보면 어깨가 으쓱해진다"며 흐믓해 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민간대표단체인 재중국한국인회는 각 지역에 지회가 있다. 한국인회에서는 지난해 대선기간 중에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재외국민투표권을 되살려 달라는 결의서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의 재외국민 정책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아쉬워했다. (2.3매)-1차줄임


올해 초 '사스(SARS)'가 중국을 공포로 몰아 넣을 때 이훈복(58) 재중국한국인회 회장은 "중국에 계속 머물렀지만 사실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인회에서는 비상체계를 구축했고 수천개가 넘는 체온계를 사서 교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선풍기 2백대를 중국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이제 결실을 얻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도 한국인회에 감사장을 주었고 공무원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우호적으로 변했다. 특히 "김치가 엄청나게 인기를 얻고 있는 걸 보면 어깨가 으쓱해진다"며 흐믓해 했다.

재중동포하면 보통 "조선족"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국에는 한국국적을 가진 재외국민도 25만이나 된다. 이 회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만 직장생활을 30년 했던 이훈복 회장은 한국에서 한미약품 이사로 일하던 그는 97년 중국에 현지 합자법인인 베이징한미약품의 초대 대표로 베이징 땅을 밟았다. 임기를 마치고 오파 유통 같은 일을 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민간대표단체인 재중국한국인회는 각 지역에 지회가 있다. 중앙본부는 베이징에 있는데 사무국 직원 3명에 간부만 80명이나 된다. 지방조직의 경우 상공회의소와 한국인회가 하나인 경우도 있지만 베이징은 분리되어 있다.

한국인회 활동 가운데 이 회장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조선족 사회와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50주년 기념식 때는 한국인회에서 10만불 이상을 지원하고 임원들이 대거참석하기도 했다. 또 베이징으로 유학 온 조선족 학생들을 위한 장학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조선족이 한국인회에 가입하는 건 불법"이긴 하지만 한국인회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나 노래자랑 같은 행사에 조선족들을 초청하고 또 조선족들 행사에도 참여한다.

한국인회에서는 지난해 대선기간 중에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재외국민투표권을 되살려 달라는 결의서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의 재외국민 정책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아쉬워했다. 중국만 해도 장관급이 화교정책을 총괄한다는 것이다.

"IMF 때 중국에선 한국으로 달러 송금하기 운동을 벌였다"며 "재외국민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걸 정당하게 평가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는 "화상들의 투자가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이 있는 것"이라며 10월에 열리는 한상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도 "한상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강국진 기자 tengis@ngotimes.net (6.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