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참사, 우리 아이들 되돌아보는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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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참사, 우리 아이들 되돌아보는 계기로"
  • 윤선옥
  • 승인 2007.05.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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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옥(본지 토론토지사장)
미국 동부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사회는 이번 참극을‘학살’, ‘피의 월요일’ 등으로 부르면서 충격과 비탄으로 몸서리치고 있다. 게다가 무고한 교수와 학생들이 33명이나 희생된 이번 참극의 범인이 불행히도 8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영주권자로 밝혀져 교포사회에 실로 엄청난 충격을 더해주었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번 사건과 범인의 실체에 대한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최대의 오보’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충격과 당혹감 못지않게 혹여 이 끔찍한 만행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불똥이 동포사회나 인종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미국 국민의 이성이 힘을 발휘하고, 그들의 성숙한 대응으로 사건이 차분하게 정리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학생회는 지난달 19일 교내 신문 1면에 ‘치유에 나서며(Beginning to Heal)’란 제목으로 외상(外傷)을 극복하고 미래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특히 이들 학생회는 주미 한국대사관에 메일을 보내 “우리의 강한 열망은 인종,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과 사람들이 안전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한국이 이러한 공동의 목적에 연대를 표시한 점에 거듭 감사한다”며 오히려 캠퍼스 학살범이 재미 한국인 학생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한국민들을 위로하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또 미 인콰이어러지는 지난달 20일 ‘한국에 보내는 편지-당신들의 사과에 담긴 교훈’이라는 사설에서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이민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국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이민자들이 보복 공격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우려하면서 오히려 '미국인이 자신의 행동과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인들의 이성과 양식있는 행동이 다소 한국인들에게 안정감을 찾아준다고 하더라도 이번 참극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던 처음 시점으로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에게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스스로 본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미국사회든 우리 동포사회든 모두가 각각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사회 부적응자, 비정상적인 정신이상자에 의한 참극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다양한 이민자들의 미국 주류사회 편입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런 끔찍한 사태가 빚어진 데는 미국의 부정적인 총기문화도 중요한 원인이다.

미국 내에서 발생한 유사한 교내 총기사건인 1999년 콜롬바인 고교사건 당시에도 총기규제를 강화할 것인지 논란을 벌였지만 총기소유권을 주장하는 로비단체들의 활약으로 이후 아무런 실질적 규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버지니아주 역시 총기소지 허가 없이 한달에 권총 한정을 쉽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총기관리가 허술했다. 이러한 과제는 미국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우리 동포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이번 사태가 한국민의 잘못이 아닌 개인에 의한 참극으로 결론지어졌다고 해서 그저 안도할 수 있는 일인가. 이번 참극의 범인이었던 조승희 가족을 들여다 보자. 그들 역시 이번 참극의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자식 교육 하나 보고 낯선 땅으로 이민 와 세탁소 종업원으로 일하며 고생한 끝에 겨우 중산층에 올라선 한 가족의 세월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또는 겪고 있는 시간이 아니던가. 자식에게 좋은 나라에서 더 나은 여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라 자부해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이국 생활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정체성 확립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돌보는 데는 힘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리네 이민생활이 고달프다 할지라도 무엇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이번 사태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민 2세대, 1.5세대 모두 이곳 주류 사회에서는 말하자면 소수자이자 소외계층이다. 결국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주류에 진출할 수 없는 한 늘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셈이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다. 우리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이민 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가정에서 나아가 동포 커뮤니티에서, 한국 정부에서 나서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疏通)’이다.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고립되지 않도록 늘 대화가 필요하다. 항상 그네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위해 가정에서 관심뿐만 아니라 동포 사회에서나 이민자들을 배출한 국가적으로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될지 함께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