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 신장 통해 미국사회 뿌리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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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 신장 통해 미국사회 뿌리 내려야
  • 류수현 재외기자
  • 승인 2007.05.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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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4.29폭동 15주년 기념 대담-장태한 교수 vs 김동석 소장
LA 4.29폭동 15주년을 맞아 당시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장태한 교수(UC리버사이드대학ㆍ소수인종학)와 김동석 소장(뉴욕ㆍ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의 대담이 열렸다. 다음은 대담을 요약한 내용.

■LA 4.29폭동의 배경과 한인들의 피해 상황

LA 4.29폭동은 1992년 4월 29일에 시작돼 5월 4일까지 이어져 미국은 물론 한인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4명의 LA 경찰관이 흑인 운전수 로드니 킹을 폭행하는 모습이 TV에 공개되면서 시작됐다.이 장면이 보도되자 인종차별이라고 여긴 흑인 청년들(라티노 청년들도 상당수 포함됨)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약탈과 방화, 살인을 저질렀다. 6일간에 걸친 폭동으로 50~60명이 폭동 중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LA 한인 타운의 90%가 파괴됐다.

폭동이 시작되자마자 미 주류 언론들은 1991년 3월 16일 흑인 빈민 지역인 남부 LA에서 발생한 이른바 '두순자 사건'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을 야기, 폭동을 악화시켰다. 당일 상점을 운영하던 49세의 두순자씨는, 오렌지 주스를 훔쳐가던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와의 말싸움, 그리고 이어진 난투극 끝에 두씨를 때려눕히고 나가던 할린스에게 총을 쏘아 숨지게 했다.

이 사건이 고스란히 감시 비디오에 기록됐고, 1년 후에 폭동이 일어난 직후 미국 언론에 의해 크게 보도됨으로써 마침 로드니 킹 사건으로 불만이 가득 차 있던 흑인들을 자극했다. 이는 곧 한인과 아시안들이 운영하는 상점에 대한 흑인들의 불매시위와 보복 행위를 야기했다. 이후 폭동은 주로 한인과 기타 아메리칸 아시안들을 향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폭동으로 인한 LA 전체 피해액은 7억 1천만달러로 집계됐으며, 그 중 한인들의 피해액은 3억 5천만달러로 절반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뼈를 깎는 중노동으로 억척스럽게 쌓아 올렸던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집단의 광기에 후일 책임자도 없었다. 그래서 단 한 푼의 보상금도 받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미 주류 언론들이 한낱 한흑 간의 갈등으로 치부한 LA폭동의 전말이다.

■LA폭동이 한인들에게 던져 준 교훈

악몽의 충격을 새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의 본질일지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키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물관을 건립하고 기록 영화를 제작하며, 더욱이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한 영화감독은 대규모 영화 작품을 연출하여 반인륜적 학살을 고발하고 인류의 잔악한 참상을 잊지 않도록 한다.

이 같은 노력에는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숨은 뜻이 있다. 즉 후세들에게 홀로코스트와 같은 잔인한 전쟁 범죄의 역사를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그 뜻을 계승하고 인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LA 폭동 15주년이 됐는데도 현재 한인사회는 그 날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별로 엿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세대 한인들은 1992년 4월 29일 LA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한인 상점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들었으나 구체적으로 왜 폭동이 발생했으며, 왜 한인들이 피해를 당했고, 4·29가 주는 의미와 교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4·29의 교훈은 늘 되새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또 다시 LA 폭동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그 첫째 교훈은, 모국 지향적인 삶을 지양하고 미국에서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뼈저린 경험이다. 한인커뮤니티에서 정치 헌금을 모금한 많은 정치가 중 어느 누구도 위급한 상황에서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류사회에 한인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재미 한인사회의 무기력한 정치력을 그대로 반영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연 한인사회의 정치력은 얼마나 신장 됐는가?

둘째,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 이방인으로서가 아닌 재미 한국인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셋째, 이민 1세대와 미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차세대와의 세대 갈등 극복의 중요성을 가르쳐 줬다. 위급한 상황에서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반영시킨 주역들은 바로 어린이로만 취급받던 차세대들이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위급한 상황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자 스스로 한인사회를 위해 나섰다. 10만 인파가 참여한 '평화 대행진'을 주도한 것도 바로 차세대들이었다. 재력과 경험을 보유한 이민 1세대와 미국식 교육을 받고 전문지식을 보유한 차세대들의 공조만이 한인사회의 미래상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민 1세대들은 차세대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넷째, LA폭동은 한인교회의 무기력 또는 무관심에 대한 질책을 가하면서 한인사회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거듭남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인종ㆍ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습득하고 타민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해줬다. 특히 흑인과 라티노에 대한 이해와 공존은 한인사회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아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살아가야

4·29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되며, 교훈으로만 남아서는 더욱 안 된다. 엄청난 피해와 충격을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소중한 교훈을 이제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은 행동은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교훈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바로 한인사회가 추구해야 할 21세기 미래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를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칭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에서 미국 동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재미 한인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잘사는 미국으로 도망갔다가 모국이 잘사니까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의 확고한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들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줄 때 차세대들도 자신들이 코리안 아메리칸임을 자랑스럽게 느끼며, 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개척하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 7개국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고 김영옥 대령 같은 분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 분은 전쟁영웅이었지만 전쟁을 미워했으며, 말년에는 사회봉사와 커뮤니티 발전에 기여한 분이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겸손함을 잃지 않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