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역사를 지닌 도시 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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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역사를 지닌 도시 헤라트
  • 임진연
  • 승인 2007.04.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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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내는 편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도착했습니다. 온 몸을 휘감는 열기와 머리에 둘러쓰고 있는 히잡(이슬람 여성들 가운데 특히 시리아․터키 등 아랍권의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이나 머리에 쓰는 가리개를 말한다. 스카프나 두건과 비슷하며, 모양에 따라 얼굴과 가슴까지 가리는 것과 얼굴을 드러내는 것 두 가지로 구분된다.)의 어색함만이 내가 다른 나라의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네요. 내일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모습으로 저를 맞이하게 될지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왠지 오늘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001
테헤란에서 쉬지 않고 버스로 27시간을 이동해서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전쟁의 상처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너무나 평온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검은 눈동자가 신기한 모양입니다. 손으로 눈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는데 도통 페르시아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크게 웃어주었습니다. 세상에 ‘웃음’이란 멋진 언어가 있어 서로를 기쁘게 해 주네요.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2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헤라트’라는 도시로 향하는 동안 여기저기 버려진 탱크의 잔해를 보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벌판 위에 덩그러니 뼈만 남은 탱크의 잔해는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한국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사람들은 나에게 “아마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머리를 감을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로 나를 긴장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주 단단히 준비를 했죠. 제 배낭의 반이 물티슈와 구강청정제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면 될까요. 그런데 헤라트에 도착해서 도시 중앙 광장을 지나가는데 커다란 분수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답니다.

#002
‘헤라트’는 정말 화려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660년 아랍인들에게 점령되어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고, 1393년에는 투르크의 통치 아래에서 과학과 문화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현재도 이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서부 경제의 중심지로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헤라트의 역사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곳에는 어떠한 전투와 폭격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곳 사람들의 표정에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도시도 화려함으로 넘쳐나고, 사람들도 너무나 친절합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어디를 갈라치면 2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서로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난리이니 말입니다. 한국에서 받지 못했던 모든 관심을 여기서 받게 되니 기분은 좋네요. 현지인들이 직접 택시비 흥정까지 해줘서 바가지 쓸 일도 없고 참 안전하게 돌아다니고 있네요.

#003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여자 감옥에 갔습니다. 이슬람 문화에 존재하는 종교법은 여자에게 너무나 불평등한 것 같습니다. 여자가 바람을 피워도 감옥에 오고, 단지 남편이 아내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온 여자들도 있습니다. 거기다 엄마가 감옥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양육할 사람이 없는 경우 아이들도 함께 감옥에 오게 됩니다. 저는 이 곳 여자 감옥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아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부터 12살인 아이까지 20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더니 내가 먼저 손을 흔들면서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수줍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오늘은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하려고 색종이를 준비해 왔습니다. 학도 만들어 주고, 꽃도 만들어 주고, 하트 팔찌도 만들어서 손목에 채워주었습니다. 수수깡과 색종이로 바람개비를 만들어서 바람 한 점 없는 감옥 안을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바람개비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오늘처럼 예쁜 미소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아다운 모습으로, 가장 순수한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004
얼굴이 온통 흙으로 뒤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습니다. 배낭의 한 켠을 차지하기만 하고 무용지물이었던 물티슈를 가지고 아이들의 손과 발을 닦아 주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발에 난 상처들이 하나 둘 보일 때마다 아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왔다고 해 놓고선 진정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준비해 온 장난감 선물이 아니라, 한번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한번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껴안아 주는 관심임을 알게 된 하루였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장난도 치고, 페르시아어도 가르쳐 줍니다. 하루하루 밝게 변해가는 아이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005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완성되었습니다. 칙칙한 감옥 한쪽에 알록달록 시소와 미끄럼틀, 그네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40도를 웃도는 날씨 가운데서도 씩씩하게 놀이터를 만들어 낸 서른 한 명의 팀원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땅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삽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웃으며 말하는 팀원들의 미소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한낮의 열기에 달아올라 뜨거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소를 타고 있습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이들의 미소를 어떠한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른 한 명의 작은 정성이 모여 이렇게 큰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아쌀라 말레이끔!(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땅을 온통 새까맣게 태워버릴 기세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만큼이나 더 뜨거웠던 나의 젊은 날의 열정을 이 곳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갑니다. 언제쯤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요? 아마 다시 못 올 수도 있겠죠. 이 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잊혀져 간다 해도 이곳에서 배운 사랑과 행복과 나눔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 기억 속에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으로 얼룩진 땅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에서 느끼지 못할 기쁨이 넘쳐나는 땅이었습니다. 이 기쁨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당신에게 참 평화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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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연(서울교육대학교「사향지기」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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