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개혁' 상쾌한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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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개혁' 상쾌한 시동
  • 브라질 조선일보
  • 승인 200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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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개혁' 상쾌한 시동

경제성장 가로막는 세제 개혁법안 첫 관문 통과
집권 연정, 하원 과반 의석 확보로 개혁작업에 날개
지지세력 잃더라도 명분지키는 정책 소신 크게 평가

룰라 대통령이 집권 이후 강력하게 추진해온 세제 개혁법안이 첫 관문을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개혁작업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29일 회의를 갖고 불합리한 세율로 국가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인으로 작용해온 현행 조세제도에 대한 개편을 내용으로 한 집권 노동자당(PT)의 개혁법안을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개혁법안은 하원 총회에 넘겨져 최종 승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현행 세제는 소비자 및 생산자에 대한 세율 책정에 있어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등 허점이 적지않아 정상적인 조세제도 정착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또 소득이 노출된 근로자들은 정해진 세율에 따라 소득의 일부를 원천징수 당하는 반면 기업인이나 변호사, 의사, 자영업자 등 전문직업인들은 허술한 세제를 이용해 공공연히 탈세를 일삼아 납세자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왔다.
이번 세제 개혁법안 통과는 룰라 대통령의 행보를 더욱 가볍게 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집권 이후 안정을 앞세운 경제정책으로 국제금융계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는데다 브라질의 외교전통을 깨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주요 의사결정자로 떠오르고 있는 룰라 대통령으로서는 앞으로 국내정치 분야에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외적인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대선 이후 '어설픈 야당'역할을 해오던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을 지난 28일 집권 연정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함으로써 하원에서 개헌에 필요한 정족수 보다도 많은 의석수를 확보,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룰라 대통령에게는 적지않은 도전도 있었다. 집권 이후 좌파의 이념과 노선을 던져버렸다는 집권세력 내부의 비난과 함께 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물론 연정에 참여했던 일부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이 이탈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인 노조로부터 '배신자'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지지세력의 분출하는 욕구까지도 잠재우는 강력하고도 명분있는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결과, 룰라 대통령은 임기 초반의 국정운영을 주도할 틀을 갖추게 됐다고 보여진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달 세제 개혁안과 함께 연금제도 개혁법안도 의회에 상정했다. 세제 개혁법안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작 공무원 연금제도야 말로 강력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돼 추진에 적지않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브라질의 공무원 연금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정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면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제금융계에서도 공무원 연금제도와 세제 개혁이 없이는 브라질의 경제성장 및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되풀이해 왔다.
룰라 대통령이 이처럼 개혁의 첫 단추를 잘 꿰면서 브라질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6월 1~3일 사이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회담에 옵서버로 초대된 룰라 대통령의 상기된 표정에서도 충분히 이런 예측을 감지할 수 있다.
반면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한 한국은 어떤가. 집권 100일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해준 세력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콘트롤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 참모나 내각도 중심을 잃은 팽이처럼 오락가락 갈팡질팡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분위기는 이미 무질서 단계로 접어들어 하루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치유불능의 상황이 전개될 판이다. 경제 사정이라고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한국은행 총재는 "저성장 고실업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로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일체의 번잡한 인연을 털어버리고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 스케줄을 가다듬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NO)라고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성 프로페셔널에 지나친 거부감을 가져서도 안된다. 국민들은 지금 화려한 수사(修辭) 뒤에 숨은 대통령의 믿음직한 소신과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