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영사관, 3년간 비자 거부… 매번 "두달 후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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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영사관, 3년간 비자 거부… 매번 "두달 후 오라"
  • 동북아신문
  • 승인 200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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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년도 달라 동포1세 친척초청 입국도 안돼

김지연 기자 enterjy@nate.com 

"고향인 한국땅을 다시 밟는데  이렇게 어렵고 힘들 수가 있습니까..."
 중국동포 한모씨(66)와 김모씨(66) 부부는 부인 김씨 친척의 초청으로 99년도에 한국에 입국했다가 동포 1세에게 중국에 돌아가면 재입국 할 수 있는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공시 발표가 난 후 2002년 3월 중국에 다시 돌아갔다.

 그 후 한국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내던 한씨 부부는 2002년 9월, 여행사를 통해 심양영사관에 동포1세 재입국에 관련된 서류를 구비해 제출했고 재입국을 신청했지만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있었던 과거 때문에 재입국 불허 판정이 났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다.

 며칠 후 직접 영사관에 찾아간 한씨 부부는 서류에 필요한 보충자료와 가족사진이 필요하다는 직원의 말에, 영사관에서 요구한 사진 등 완벽하게 서류를 준비해 다시 영사관에 제출했다.

 그 후, 영사관은 한씨 부부에게 "부인 김씨의 호적이 본인의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재입국은 기각 되었으니 두 달 후 다시 서류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보냈고, 한씨 부부가 항의하며 영사 면담을 신청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

 억울함을 누르고 똑같은 서류를 가지고 두 달을 기다린 한씨 부부는 2003년 4월, 2차 신청을 했으나 그 역시 "김씨의 호적을 입증할 수 없다" 는 같은 이유로 두 번째 기각판정을 내렸다.

 영사관에서 한씨 부부에게 통보한 기각판정의 이유는 "중국 호구부와 한국 호적의 생년이 달라 본인 확인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부모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된 것은 김씨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로 김씨의 중국 호구부에는 1943년 6월 6일 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한국에 있는 김씨의 호적은 1940년 6월 6일 생으로 올라가 있어 이 두 서류에 3년이란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한국에 살고 있는 외사촌 등 친척들이 모든 증명 서류를 보내주어도 단지 '생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영사관 측은 두 차례나 기각판정을 내렸고 한씨 부부에게 서류를 되돌려 주려고 했다.

 너무나 억울한 한씨 부부는 서류를 돌려 받을 수 없다고 한 뒤 총영사와의 면담을 신청했으나 받아지지 않았다. 1,2차 기각 이후 한씨 부부는 한국의 법무부에 편지를 보내고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메일을 보내 부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등 한국에 도움을 청하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역시 "영사관 측과 얘기하라"며 "한국에서는 관여할 수 없다"는 답장만을 받을 뿐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6개월 동안 두 번의 기각으로 지쳐버린 한씨 부부는 2003년 5월, 영사관 측에 제출한 서류와 가족사진첩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대행 여행사에 이첩했으니 그 곳에서 찾아가라"고 했고 찾아간 여행사 측은 "영사관에서 서류를 받은 적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황당한 한씨 부부는 다시 영사관에 서류 반환을 재촉했고 그제서야 영사관 측은 "모두 등기우편으로 보냈는데 못받았냐"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영사관 측이 보냈다는 그 등기우편은 손바닥 만한 봉투로 두꺼운 서류뭉치와 사진첩이 도저히 들어갈 없으며 '호적 생년이 틀려 재입국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통보장이 한 장 들어있을 뿐이었지만 영사관은 딱 잡아떼며 보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한씨 부부는 영사 면담을 요청하고 계속 영사관에 항의했지만, 영사관은 이리저리 변명만 할 뿐 영사를 만나게도, 한씨의 요청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4년, 한씨 부부의 억울한 사연이 대대적으로 한국의 방송사에서 보도가 되었다. 그제서야 영사관 측은 한씨 부부에게 "서류는 돌려주는 것을 안 받았으니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며 "여권을 만들어 오면 한국비자를 주겠다"고 통보해왔다.

 이번에는 당연히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마음으로 급히 여권을 만들어 영사관을 다시 찾은 한씨 부부는 또 한번 '기각'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고, 그 기각사유 또한 "호적에 생년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똑같은 이유였다.

 그 해 8월, 심양영사관 비리 사건으로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 목사, 국회위원들이 심양영사관을 찾았고 조선족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벌인 토론에 참석한 한씨 부부는 억울한 사연을 말했고, 영사에게 100% 비자를 주겠다는 답변을 받아냈지만 그 후 영사관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어떻게든 한국에 다시 입국해야겠다고 생각한 한씨 부부는 2004년 12월, 친척초청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 올 수 있다고 하기에 동포1세 입국 서류가 아닌 친척 초청 서류를 작성해 갔으나 영사관 측은 그 서류까지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60세 이상 노인비자를 발급해 주었고 한씨 부부는 결국 온갖 억울함을 당하고 3년이 지나서 울며 겨자먹기로  60세 이상 노인비자로 한국에 입국하게 됐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억울함을 씻을 수 없다"고 성토한 한씨 부부는 "같은 이유로 네 번씩이나 기각을 하면서 왜 자꾸 두달 후에 오라고 했는지 영사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며 가슴을 쳤다.

 또, "3년 간 이렇게 투쟁하고 완벽한 초청장을 가지고도 결국 친척초청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편, 서울조선족교회는 한씨 부부의 사연을 듣고, 한 노부부가 서류 상의 잘못과 영사관의 안일한 대처로 3년에 걸쳐 고통 받은 억울하고 딱한 사정을 법무부에 전하고, 선처를 호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