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어 망국병 그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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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어 망국병 그대로 둘 것인가!
  • 리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 승인 2023.12.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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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겨레말은 그 겨레 얼이고, 그 나라 말글살이는 그 나라 국민정신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일반 국민은 말할 것이 없고 국가기관까지 제 나라 말글을 마구 짓밟아 말글살이가 어지럽고 국민정신이 흔들린다. 아파트와 회사 이름은 온통 영어요, 거리 영어 간판은 나날이 늘어나고 공공기관 알림글도 나라 말글을 지키고 바르게 써야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영어를 마구 섞어 쓴다. 국가기관 명칭에 영어가 들어가더니 부산시 강서구 법정 동 이름까지 영어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지자체 이름과 나라 이름까지 영어로 바꾸자고 할 판이다. 이 영어 마구 쓰기는 망국병으로 빨리 고쳐야 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 글자 한글을 가지고도 조선시대 400여 년 동안 제 글자를 외면하고 중국 한자를 즐겨 썼다. 1886년 고종 때에 우리나라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 청년 헐버트는 조선이 수천 년 전 중국 한문으로 쓴 사서삼경을 시험과목으로 공무원을 뽑고, 조선 지식인들이 제 글자는 헌신짝 보듯이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그 잘못을 일깨우려고 스스로 우리 말글을 배워서 3년 만에 한글로 ’사민필지‘라는 세계 사회지리책을 써서 교재로 삼아 교육했다. 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다른 나라 지리와 물정까지 배우고 과학과 기술을 익혀서 국민 지식수준을 높이고 외국과 교섭하는데 조선은 그 꼴이니 일깨우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 그때 제 나라 말글로 가르치고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은 주시경이 1896년에 서재필, 헐버트와 함께 한글로 만든 독립신문사에서 일하면서 그 안에 ’국문동식회‘리는 한글연구모임을 만들고 한글을 갈고 닦기 시작하면서 우리 말글을 잘 부려서 쓸 수 있는 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키웠다. 그리고 그는 1908년 제자들과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를 만들고 한말글을 살려서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주시경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일제 때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재건하고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서 1945년 광복 뒤 우리 말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를 쓰고 교육하게 되었다.

그렇게 간신히 한글이 나라글자로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 일본 식민지 국민 교육으로 일본식 한자 섞어 쓰기에 길든 일제 지식인들이 정치인, 공무원, 학자로서 한글을 못살게 굴어서 50여 년 동안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한글과 한자가 치열하게 싸웠다. 다행히 한글이 이겨서 한글나라가 되려는 판에 미국말 섬기는 바람이 불어 오늘날 영어가 우리말을 마구 짓밟고 있다. 그래서 그러지 말자고 국어기본법도 만들고 애국 시민단체가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 해도 되지 않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들까지 나오고 공기업인 한국통신은 KT, 주택공사는 LH처럼 영문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이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영어 바람이 세차다.

오늘날 이런 모습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중국 땅이름과 관직 명칭까지 그대로 가져다 쓰고 중국 문화와 한문을 섬기면서 뿌리내린 언어사대주의가 되살아난 꼴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을 시켰는데 오늘날은 우리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는 꼴이다. 이제 거리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영문 간판이 늘어나고 아파트 이름, 회사 이름은 거의 영어이름이다. 2010년에 대전시 유성구 ‘테크노빌리지’ 아파트 주민들이 동 이름을 ‘테크노동’이라고 바꿔야 집값이 오른다고 요구하니 유성구가 그렇게 바꾸었다가 우리말로 다시 되돌아간 일이 있는데 요즘 부산시 강서구청이 새로 생기는 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정하려고 한단다.

영어 창씨개명과 영어 마구 섞어 쓰기는 제 겨레 얼과 나라를 망칠 망국병이고 바보짓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나라를 만들고 그 바탕에서 우리 문화가 꽃펴 한류라는 이름으로 나라 밖으로 뻗어 나가고 외국에서 우리말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데 나라 안에서는 이렇게 제 말글을 짓밟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정부에 이런 잘못을 막을 국어정책과와 국립국어원이 있으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국어기본법이 있으나 법을 어기면 처벌한다는 조항이 없어 무시하니 있으나 마나다. 이제 스스로 이 거센 망국병을 고칠 수 없게 되었다. 빨리 국어기본법을 어기면 처벌한다는 법 개정을 해서라도 막아야겠다. 만약 그대로 두면 고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겨레말 사망선고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말글을 살려 쓰면서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어 국민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외국인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칭찬까지 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한글을 살려 썼기에 가능했다. 그때는 나라 기운에 일어나고 국민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제 말글살이가 어지럽게 되면서 자신감을 잃고 나라까지 흔들린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가 일어나지 못하게 조종하는 거 같다. 겨레 존망이 달린 중대한 문제다. 정신 차리고 빨리 바로잡자. 그리고 힘차게 다시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