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에 충남 땅 크기 특구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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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에 충남 땅 크기 특구 추진
  • 중앙일보
  • 승인 2005.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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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5-03-05 08:16]  
 

   
▲ 러시아 연해주 3국 협력특구

[중앙일보 김시래] 남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연해주에 충청남도 크기의 '3국 협력특구' 건설을 추진한다.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대고, 러시아와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공급해 대규모 농업.경공업 단지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 특구가 조성되면 1937년 러시아가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뒤 처음으로 '고려인(한민족) 자치구(Okrug)'를 허용하는 의미가 있다.

외교통상부 산하 단체인 재외동포재단과 민간단체인 국제농업개발원은 최근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이 같은 특구 건설을 추진키로 했다고 4일 밝혔다. 특구 위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한카호 일대가 될 예정이다.

이곳은 총 26억 평 규모로 대부분 초지와 논.밭으로 이뤄져 있다. 석유.가스.다이아몬드 등 지하자원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동포재단과 국제농업개발원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년 전 '민족문화자치회에 관한 법령개정안'에 서명해 고려인 자치구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법에 따르면 같은 민족 3만 명 이상이 모여 살면 공화국.자치주.자치구 등 크고 작은 정부를 세울 수 있다. 현재 21개 자치공화국과 2개의 자치주, 9개의 자치구가 있다. 자치구에서는 주민 스스로 정치.경제적 통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만 연방정부와 협상해 권한의 한계를 정하는 자치법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러시아에는 약 12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연해주 건설 초기 투자비는 90년 한.소 수교 때 우리 측이 제공했던 차관(잔액 15억8000만 달러) 상환금이 거론되고 있다. 이병화 국제농업개발원장은 "러시아 측이 차관 상환금액 중 6억 달러를 초기 투자비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일부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이화영(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원 측은 "향후 고려인 자치구 건설을 위해 정부 예산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광재 의원 측도 "연해주가 자원이 풍부해 개발 방안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3국 관계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곧 개최될 예정인 '한.러 농업박람회' 에서 다시 만나 이 문제를 추가 논의할 방침이다.

북한 측은 이 지역에 농민 등 25만 명 정도를 투입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연간 약 80만t)을 북측이 인건비 명목으로 가져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구상이 실행되기까지는 난관이 많다. 우선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러시아 차관은 2007년부터 2025년까지 전액 현금으로 돌려받기로 이미 합의된 상태"라며 "이 돈의 용도를 놓고 정부 차원에서 재협상할 수 있겠지만 아직 계획이 없다"고 했다. 민간 투자 유치 가능성도 아직은 미지수다. 일부 전문가는 "연해주 지역은 경제성이 작은 데다 정치적으로는 국경을 맞댄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 투자.개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sr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