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건 전 국회의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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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건 전 국회의원 별세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2.12.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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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의 동포사회 구석구석에 따스한 손길과 발자취 남겨
유재건 전 의원
유재건 전 의원

유재건 전 국회의원이 12월 1일 오전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1989년 미국 연방정부 지역사회변호사로 일했고, 1982~1990년 미국 LA에서 법률사무소를 경영했다.

고인은 LA에서 살인 누명을 쓴 이철수 씨의 무죄를 확신해 1977년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했고, 이에 동참한 한인들이 20만 달러의 성금을 모으는 등의 노력으로 1982년 9월 3일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 이 씨가 교도소 복역 중 정당방위로 맞서다 살해한 사건에 대해 사형판결을 받은 제2의 사건도 1983년 사형판결이 무효화됨으로써 이철수 씨는 풀려났다. 고인은 2009년 사건 기록을 담은 책 ‘함께 부르는 노래’를 펴냈다.

1990년 귀국 후에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며 정치를 시작,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9년부터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다. 

LA 한인동포사회에서 시작된 고인의 재외동포 사랑은 2004년부터는 더욱 폭넓게 이어졌다. 재외동포 참정권, 불법체류 중국동포 문제 해결, 교민청 설립을 주장했고, 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국내대회에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빠짐없이 참석해 성원했다.

2008년 11월 재외동포포럼 창립회원으로 참여했고, 2010년에는 외국인 전문가를 초청해 ‘입양인의 국내입양’을 주제로 포럼을 주관하기도 했다. 

재외동포신문의 자문위원장으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발로 뛰는 영사상’과 ‘올해의 인물상’ 심사위원장을 맡아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2015년 4월 재외한인구조단이 발대식을 할 때부터 그 역할의 중요성을 공감해 성원했고, 2018년에는 사단법인 설립과 동시에 초대 이사장으로 단체의 성장을 도왔다.  

고인의 재외동포 사랑은 안팎의 동포사회 구석구석에 따스한 손길과 발자취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 씨와 사이에 2남1녀(유승영·유수화·유대현)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5일 오전 발인을 거쳐 미국 서부에 있는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