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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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라
  •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 승인 2022.06.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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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묘역 108호에 1970년 조성됐다가 2009년 멸실된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라

최재형 선생은 독립운동의 태동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고 한인들의 페치카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제67회 현충일을 앞둔 지난 5월 25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1970년 조성됐다가 2009년 멸실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과 서한 및 자료를 새 정부 대통령실에 보냈다. 

또한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과 함께 SNS를 통해 최재형 선생 묘 복원에 대한 국민서명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약 4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으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들도 앞장서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재형 선생 묘지 복원 서명운동 용지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최재형 선생 묘지 복원 서명운동 용지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호는 원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였다. 1970년 11월 17일 묘 조성 당시 후손으로 등록된 사람은 가짜 후손 최규흠이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당시 철의 장막이라 일컫던 소련에 살다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야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1995년에 독립운동가 후손초청사업으로 최재형 선생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와 손자 최 발렌틴이 한국에 왔고, 그 후 최재형 선생의 후손으로 등록됐던 최규흠과의 DNA검사를 통해 최규흠은 가짜후손으로 밝혀졌다. 가짜후손 최규흠은 사망할 때까지 무려 10여년이 넘게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던 것이다. 

2004년에야 비로소 최재형 선생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가 보상금 수급자로 등록됐고, 2005년 최 엘리자베타의 사망으로 손자 최 발렌틴이 이어받았다. 

2006년 애국지사묘역 108번에 손자 참배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이 2006년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조성된 할아버지의 묘를 방문해 참배하는 모습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2006년 최 발렌틴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안내를 받아 애국지사묘역 108호 최재형의 묘에 참배를 했고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2009년에 최 발렌틴이 현충원에 참배하러 갔을 때 묘는 멸실돼 있었고, 그는 묘가 있던 빈 터에 꽃다발을 놓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2009년 손자 최 발렌틴이 참배하러 와서 묘가 멸실된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사진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2009년 손자 최 발렌틴이 참배하러 와서 묘가 멸실된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모습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호는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였기 때문에 후손이 가짜로 판명돼도 그 묘의 주인은 최재형 선생이다. 후손만 바꾸면 되는데 후손에게 연락도 없이 묘를 멸실시켰다는 것은 최재형 선생을 독립운동사에서 삭제시킨 것과 같다. 행정착오로 가짜 후손을 등록했다면 진짜 후손이 나타났을 때 시행착오를 밝히고 제대로 모셨어야 마땅하다. 

할아버지의 묘에 참배를 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연락도 없이 묘는 없어지고 남은 빈터만 보는 손자의 마음이 어땠을까? 당시 최 발렌틴은 언어도 통하지 않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 채 그냥 돌아갔다. 

손자는 2010년 자신이 러시아어로 출간한 책 <최재형>에 사진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실었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2015년 부부위패비 5번에 겨우 최재형 선생 부부의 이름만 올렸다. 기념사업회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어마어마한 재산과 생명까지 바친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을 200여명이 넘는 부부위패비 한 귀퉁이에 이름만 올린 것이 항상 죄스럽고 안타까웠다. 

2021년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최재형 순국 100주년을 맞아 보훈처와 청와대를 찾아가 후손도 모르게 멸실시킨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현행법만 내세워 반드시 유골이나 시신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만 들었다. 
 
과거의 정부가 잘못한 일이 밝혀지면 새 정부가 바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이 순국선열의 예우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법이 바뀌었다고 잘못된 행정을 그래도 답습한다면 그 또한 과거의 행정착오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엘레나페트로브나의 묘비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엘레나페트로브나의 묘비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된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페트로브나의 묘지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된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묘지 (사진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현재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페트로브나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로 머나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돼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최재형 선생 부인의 유골을 봉환해 올테니 1970년 11월 17일 조성돼 2009년까지 존재했던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해 부부합장묘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주키르기스스탄한국대사관과 협력해 올해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올해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이다. 현재 후손들한테도 동의서를 받아놓았다. 부인의 유골과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집 마당에서 흙 한 줌을 가져오거나, 최재형 선생의 유품을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부부합장묘로 복원시킬 준비가 돼 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 77주년이며 최재형 선생 탄신 162주년이다. 이렇듯 뜻깊은 해에 최재형 부부 합장묘를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복원해준다면 새 정부는 상징적으로 순국선열을 제대로 모셔서 과거정부와 차별화가 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홍범도 장군의 훈격을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승격시켜 유해를 고국으로 안장했다. 훈격을 최고등급으로 승격한 이유가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재형 선생은 초기 독립운동의 태동지였던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고 한인들의 페치카였다. 또한 엄청난 재산과 목숨을 바쳤고 당시 연해주 한인들에게 난로역할을 하신 분이다. 게다가 1919년 11월부터 독립단 단장까지 했다. 

1962년 서훈심사는 최재형 선생의 신분이 낮고 후손도 없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있다는 것을 관심을 가진 분들은 다 공감한다. 더더구나 연해주에서 최재형 선생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분들의 서훈은 거의 2등급인 대통령장이고 1990년 이후 서훈을 받은 분들도 모두 대통령장이다. 최재형 선생의 서훈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데 재심의 조항이 없어서 조정을 못한다고 한다. 미비한 조항은 보완하면 되고, 없는 조항은 필요시 새로 만들어 재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법이 없어 못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같다. 정 안된다면 홍범도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처럼 별도의 추가서훈 방법도 있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이 고향이라 지원해 줄 지자체도 없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구성원들은 최재형 선생과 혈연도 지연도 없는 순수한 단체로 그 어떤 이권도 사리사욕도 없다. 오로지 훌륭한 삶을 살다 가신 최재형 선생을 제대로 알리고 선양하는 단체이다.  

2022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재형 선생의 원래 묘였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호를 복원해서, 키르기스스탄에 돌보는 이도 없이 방치돼 있는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골을 국내로 모셔와 최재형 선생과 부부합장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