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쟁 통에도 아이들은 웃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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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쟁 통에도 아이들은 웃을 권리가 있다
  •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 승인 2022.03.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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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br>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한 지도 어느새 5주가 돼간다. 처음만큼의 관심은 아니더라도 TV 뉴스나 포털을 통해 전쟁 소식을 접하다 보니 코로나와 더불어 전쟁 소식도 일상의 한 부분이 돼 버렸다. 

세계 각국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수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고 지속적인 구호물품이 폴란드로 집결돼 폴란드 내 전쟁 난민 지원과 우크라이나 본토로의 이송이 진행되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한편으론 아쉽다.

역사를 보면 전쟁이 터졌을 때마다 늘상 소외되고 외면당하던 대상이 있다. 그들은 서민 계층(양민들), 여성, 소수민족, 아이들이다. 

이젠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현 전쟁상황에서도 보여주듯 일반 서민계층과 여성들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대단하다. 과거처럼 그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시대였다면 무차별 폭격으로 이 전쟁은 아마도 수일 만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처절한 저항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세계적 이슈인 일반 대중과 여성의 인권문제를 피해 선별 타격해야만 하는 러시아의 고충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전쟁 속의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보낼 선물 꾸러미를 제작 한인 자원봉사자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보낼 선물 꾸러미를 제작하고 있는 한인 자원봉사자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크라쿠프한인회에선 얼마 전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교민들의 많은 참여와 자발적인 봉사 속에 320명의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꾸러미를 제작해 우크라이나 현지에 전달했다. 꾸러미 속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장난감, 킨더 초콜릿, 사탕 등을 담았다. 전쟁으로 슬퍼하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울음을 그치고 설레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폴란드 아이들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준비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 속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 젤리 등을 담았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 속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 젤리, 사탕 등을 담았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이 선물꾸러미들을 우크라이나 현지로 보내는 데 나름 애를 먹었다. 대부분의 현지 NGO 단체들이 요청하는 목록 리스트를 보면 아이들을 위한 것보다는 현찰이나 헬멧, 군복, 손전등 같은 전선에 보낼 물품 또는 쌀, 담요, 의복, 의약품과 같은 생필품이나 의료용품을 우선적으로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제한된 운송차량에 아이들을 위한 얼마 안 되는 물품을 실을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쟁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시각은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느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 전쟁을 바라본다면 과연 어떻게 비쳐질까?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친구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욕심내지 말고 친구와 나눠 먹어라. 힘센 친구가 약한 친구 괴롭히면 도와줘야 한다 등등.

하지만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언어는 공허하고 거짓투성이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친구의 것을 서슴없이 빼앗고 심지어는 죽이는 것조차 겁내지 않는다. 힘센 친구가 약자를 괴롭혀도 여럿이 모여 구경만 할 뿐 이런저런 핑계 속에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걱정하며 멀찍이 떨어져 약한 친구에게 이기라고, 힘내라고 응원만 한다.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역에 모인 우크라이나 난민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역에 모인 우크라이나 난민들 (사진 심경섭 폴란드 크라쿠프한인회장)

모든 매스컴은 어른들의 언어로만 가득 차 있고 자녀에게 이 전쟁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물어보기 보단 자신들의 생각을 이해시키기에 바쁘거나,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말하고 있다.

이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똑같다고 여긴다. 아이가 웃어줄 때 부모는 행복하다. 그 웃음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짊어진다.  

전선에 나가 싸우는 우크라이나 엄마, 아빠의 마음도 똑같지 않을까? 전쟁 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가 웃을 수 있다면 전선이라는 삶의 가혹한 무게조차 묵묵히 지려할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양로원이나 노인정은 분주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머무는 고아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한산하다.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도 아이들은 웃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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