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처럼 달처럼’을 발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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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처럼 달처럼’을 발간하며
  • 박은숙 캐나다 해오름 한국문화학교 교장
  • 승인 2021.05.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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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의 발자취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Haeoreum’s Footsteps)
박은숙 해오름한국문화학교장
박은숙 해오름한국문화학교장

해오름 한국문화학교가 캐나다 밴쿠버의 한국 입양인을 위한 한국문화 지원 단체로 함께 한지 1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해오름은 건강한 입양가족을 대상으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언어, 생활, 정신문화 교육 프로그램 및 문화교류를 제공을 목적으로, 한국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의 해외 입양인 사후관리 사업 시행과 개인 및 기업의 후원, 자원봉사자들의 인적·물적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이다.
 
부모님의 치마폭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르던 입양아들이 자라 청소년이 되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도 직업인이 됐으며, 젊던 양부모님들은 흰머리가 늘어가고, 성인 입양인 역시 20대에서 30, 40대의 가장이 돼 가정을 이루고 이제는 캐나다 속의 한국, 가족 공동체가 됐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의 시간 동안 해오름 가족이 함께 나눈 발자취를 더듬어 위로와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희망을 노래하고자 ‘해처럼 달처럼’을 발간하기로 했다. 

캐나다 입양인들을 위한 밴쿠버 해오름 한국문화학교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해처럼 달처럼’ 표지
캐나다 입양인들을 위한 밴쿠버 해오름 한국문화학교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해처럼 달처럼’ 표지

해오름 10년의 발자취를 담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오랜 동안 친구처럼 지내왔던 성인 입양인조차 “너가 입양인의 아픔을 알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내 삶을”…. 그래서 묵묵히 기다렸다. 성인이 돼서도 그들의 마음 한 켠에 차 있는 슬픔과 분노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침묵만이 가장 절실한 치유의 도구이자 소통이었다.

입양인이나 입양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이 오히려 상처라고 한다. 하지만 생애 한 번은 내뱉고 싶은 고백이라 말한다. 자신의 심정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지우는 동안 오랜 갈등이 해소되는 기회가 됐다는 참여자, 7~8회 원고를 오가다 결국 포기한 참여자, 우여곡절이 많아 난관에 부딪칠 때, 중단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오름과 함께 해 온 시간에 대한 감사함으로 위로가 된다는 그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결국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을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한 줄의 메시지로 차곡차곡 채웠다. 입양인의 사연보다 우리가 함께 걸어 온 입양인과의 거리를 담았다. 

봄의 이야기는, 밴쿠버 입양인 모두의 감사한 마음을 담을 수 있어 기쁘다는 필자의 발간사와 함께 시작된다. 정병원 주밴쿠버총영사님은 축사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인 입양인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해 온 해오름 관계자에게 감사를 전했고, 연아 마틴 캐나다 상원의원님은 입양인들이 미래의 리더로서 꿈을 믿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며 헌신하고 노력하는 입양인 부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해오름과 특별한 우정으로 함께 성장해 온 이우석 6·25참전유공자회장님은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소중한 친구들의 축사로 이 책의 봄,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름 이야기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와 해오름 입양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미예 봉사자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를 깊이 느낄 수 있었고 해오름과 함께한 시간은 사랑과 따스함으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박현준 봉사자는 마음을 다해 봉사하고 싶었던 해오름과의 인연으로 다양한 추억과 함께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언제나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을 더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다사로움을 더했고, 팔순의 이옥순 님은 남은 밥도 소중히 싸가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밥을 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막내 봉사자 종찬이는 해오름을 통해 그 역시 몰랐던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더욱 보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약속한다. 이호진 봉사자는 해오름의 숨은 일꾼으로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내가 알고 싶은 아름다운 세상은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었다 말하는 정소영 봉사자, 해오름의 리더인 어머니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가족의 의미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는 따스한 시간이었다 말하는 임현수는 필자의 아들이자 10년이 넘는 봉사자이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죠는 아들이 해오름과 더불어 한국인과 캐나다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진 십대로 잘 자랐다며 봉사자들의 열정과 시간 그리고 사랑에 감사를 전하고 활동을 지원해 준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했다. 청소년기를 맞은 제이슨은 해오름을 통해 한국을 알고 배우는 동안 자신감이 생겼고 특히 모국 방문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고 말한다. 카알의 가족은 입양 자녀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게 해준 해오름에 감사와 존경을 표했으며, 나빌 가족은 해오름에서 만난 인연과 봉사자들의 사랑, 배려, 공감과 관대함에 대해 더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폴 가족은 해오름이 그의 가족에게 끼친 커다란 영향력과 서로 다른 다민족 다문화를 가진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라운 추억이 됐다고 말한다. 코비 가족은 입양 자녀들로 비롯해 연결된 해오름에서 쌓은 우정에 감사했고 가족 간의 유대감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받은 축복과 우정에 감사하다고 했다. 부끄러움이 많아 참여하지 못한 봉사자와 가족들이 많아 아쉬웠지만 마음만은 함께 했으리라 믿는다. 모두가 기쁨과 감사와 깊은 우정으로 가족 공동체로서 이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닿아 있다.

캐나다 입양인들을 위한 밴쿠버 해오름 한국문화학교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해처럼 달처럼’
캐나다 입양인들을 위한 밴쿠버 해오름 한국문화학교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해처럼 달처럼’ 중 입양인들의 모국 방문 에피소드를 담은 ‘천 개의 컵받침’ 

가을 이야기에서는 해오름이 지나온 발자취를 담은 글들이 소개된다. 첫 장을 연 ‘오인 오색의 오월’은 5명의 화가들이 바자회 참여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 먼 캐나다까지 화폭에 담아 온 풍경에 펼치는 아름다운 모성 이야기이다. ‘터치 & 터치’에는 성인이 된 입양인과 양부모들의 대담을 담았다. ‘천 개의 컵받침’은 모국 방문 시 입양기관의 서울 영아 임시 보호소에서 만난 영아들을 본 아이들의 표정이 모티브이다. “야! 우리가 아기였을 때 여기에 있었데, 믿어지지 않아, 이렇게 예쁜데……” 아이들은 한동안 아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순간 필자는 아이들의 가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스침은 한동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많은 이야기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 소중한 글이 있다. 캐나다 ‘한인 입양인 권익신장과 입양단체 활동지원 컨퍼런스’ 발표문이다. 이 발표문을 통해 세계 각국의 교육자들이 입양인에게 보낸 관심은 놀라왔다. 발표문을 통해 소개한 내용을 더 알고 싶어서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모두들 입양인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관심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해오름 교사들이 BC주로부터 자원봉사 표창을 받은 미디어 기록과 필자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캐나다와 세계를 위해 봉사한 헌신과 더 나은 공동체의 삶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고 표창하기 위해 제정된 ‘캐나다 건국 150주년 상원 기념 메달’을 받은 내용도 기록했다.  

마지막 겨울 이야기에는 성인 입양인 3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들은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고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감정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채 글을 써내려 가기도 했지만 필자는 그 응어리를 그대로 담아냈다. 더러는 너무 감정이 복받치고 응어리져 실지 못한 글도 있다. 입양인과의 시간을 당사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기록한 거라 의도적으로 싣지 못하고 번역하지 않은 부분도 많아 아쉽고 미흡하다. 
 
한영판이라 한글의 미세한 부분을 놓칠세라 한국의 출판사를 선정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출판을 의뢰한 출판사도 온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참여해 7여 차례 편집 과정을 오가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밤낮을 보냈다. 오타도,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잘 보이지 않았다. 행간 사이에 박힌 가시로 줄곧 마음이 아려 왔고 시야가 흐려졌다. 필자로서는 최선을 다한, 활자가 거꾸로 박혀 나와도 감사한, 소중한 책이다. 

지난 4월 17일 밴쿠버 블루마운틴 공원에서 열린 ‘해처럼 달처럼’ 출판기념회 모습
지난 4월 17일 밴쿠버 블루마운틴 공원에서 열린 ‘해처럼 달처럼’ 출판기념회 모습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함께한 분들의 오롯한 마음자리를 담을 수 있어서 제 삶의 따듯한 순간이었다. 관련자 분들께 책을 보내고 많은 격려와 감동의 리뷰를 받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입양인에게 모국의 심장 소리를 멈추지 않고 뛸 수 있게 밑거름이 되어 준 해오름’ 이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책은 그간 일어난 모든 활동과 이벤트에 대한 아름다운 요약이라고 말한 또 한 리뷰어는 이는 하나의 맺음이자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내가 멈출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구나...’ 깨달았다. 

책에 자신의 입양 이야기를 들려준 성인을 만났다. 이 책이 슬픔도 불러왔지만 희망을 느꼈다는 말과 여전히 슬픔을 지니고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의 도움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작은 책을 우리의 어린 아가였을 그대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담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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