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가 된 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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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가 된 상속인
  • 안상호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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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대상이 아니다
목이 메도록 찾은 가족

이동구를 입양시킨 윤귀주라는 여인은
이동구의 법적 어머니이다
故 이원만 회장과 주소지가 같은 것으로 미루어
사실혼 관계인 것으로 추측된다
입양사유서엔 어머니인 자신은 61세이고
아버지도 연로한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부득이 입양을 시킨다고 기록돼있다

코오롱 그룹 창설자 故이원만 회장의 친아들인 이동구씨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곧 고아원에 보내졌고
다시 홀트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어졌다
이동구씨는 이 과정에 대한 기억이 생생이 살아있어
힘들고 아픈 입양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뒤늦게 뿌리는 찾은 이동구씨는
가족이 그리워 수없이 코오롱측에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소송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주(314호, 12월 15일자) 보도된 〈코오롱 그룹 친자확인, 피는 물보다 진한데〉기사엔 많은 반응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도해 달라는 주문과 코오롱 그룹 일가의 부도덕성에 대해 분노한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 기사는 '미주신문인협회'에서 전국에 동시 보도됨에 따라 각 지역에서의 여론도 팽배해지고 있다.
멀쩡한 형제를 고아원에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입양시키는 그런 악랄한 짓을 꾸민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 여론으로나마 응징하여야 할 것이다.
코오롱 측의 답변은 상속의 유효기간이 지났느니 어쩌니 하지만 이는 법률적 문제를 떠나 있고 설사 법의 효력이 없다해도 원천적으로 무효화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코오롱 그룹의 계략에 의한 각본이었음이 하나씩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이동구씨와 그의 생모인 이미연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코오롱 그룹의 실체와 코오롱 측의 대응 및 모자의 아픈 심경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designtimesp=2056>

◎ 현대판 요셉의 형제들
성경의 창세기에는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가는 대목이 나온다. 팔려가 종살이를 하지만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총무가 되기에 이른다. 그 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아 이를 뿌리치자 부정한 여인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게 만든다.
결국 11년의 종살이 고생과 2년의 감옥생활을 하다가 애굽의 총리까지 된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렇게 되었다는데 코오롱 그룹과 얽힌 이동구씨의 사연은 한마디로 현대판 요셉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동구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친아버지인 故이원만 회장이 설립한 코오롱 그룹의 형제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수없이 코오롱측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해왔을 뿐만 아니라 이동구가 이원만 회장의 친자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DNA 테스트까지 거부하고 있어 할 수 없이 소송에 이르게 된 것이다.
홀트 아동 복지회와 이동구씨가 코오롱 측에 보낸 서신을 보면 그 사연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2000년 3월 27일자로 홀트아동복지회 사회사업부 성경희씨가 '이동구가 한국의 가족에게 드리는 편지'를 동봉해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다.

『李東燦 선생님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홀트아동복지회 사회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성경희 입니다. 지난 2월 24일 선생님의 先親 李源万님과 관련된 일로 서신연락을 드리고 연락주시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李東九는 혈육이신 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본인과 交信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東九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그의 기억 속에서 한국인 양모(아마도 尹貴珠씨를 의미한다고 사료됨)와의 생활도,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연유로 인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이미 성인이고 미국의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므로 당연히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어야 하나 독립하는 문제에 대해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친가족의 심리적 지지를 받고 싶어하며 자신의 건전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드리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를 동봉합니다. 가족에게 처음 쓰는 편지라서 비록 짧고 하고픈 얘기를 다 표현하지는 못했으나 읽어주시고 도움의 길을 열어주신다면 그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리라 사료됩니다. - 성경희 드림 』

『그리운 저의 가족께
저의 이름은 이동구입니다. 저의 아버님의 함자는 李字 源字 万字 이십니다. 저는 이 편지를 받으신 분이 저를 알고 계시는지 알 수 없으나 어르신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미국에서의 제 삶은 아버님께서 저를 위해 마음을 써 주신 것만큼 완벽하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저는 저 자신의 의기소침, 일종의 우울증과, 양부모님과의 의견차이, 의견대립 등과 외롭게 싸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또한 전용상씨가 제 양부모님에게 전했던 돈은 저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양부모님은 제게 전혀 알리지 않고 그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 돈은 아버님으로부터 상속되어진, 저를 위해 쓰여지도록 배려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저는 한 푼도 구경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혈육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발 제게 연락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이동구 드림 』

◎ 윤기주, 전용상은 누구인가?
우선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이동찬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 언급되어 있는 윤귀주 여인은 호적상에는 없으나 이동구가 생모 이미연씨와 생이별, 이원만 회장 집에 보내진 뒤 입양 전 까지 기른 여인이다. 즉 이동구의 법적인 어머니로 되어 있고 윤귀주씨의 주소도 고(故) 이원만 회장의 호적주소와 같기 때문에 동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는 윤귀주씨가 이동구를 입양시키는 동의서를 직접 작성한 것에서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
홀트에 기록된 이동구의 입양사유는 "생모는 나이 많은 생부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시간 만나 동구를 갖게되었지만 1980년에 헤어진 다음 법적인 어머니와 생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러나 법적 어머니의 나이가 61세이고 생부 역시 연로할 뿐만 아니라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더 이상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로 기술되어 있다.
이와 관련 일반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입양절차도 3개월만에 신속 처리됐다.
그러나 이원만 회장에게는 본 부인에게서 난 형제자매만 7명인데다 8번째는 더 찾아봐야겠지만 동구가 9번째 자식이고, 비록 이복이지만 엄연한 형제지간인 이동찬 코오롱 그룹 명예회장은 1922년생으로 1985년 동구를 입양 보낼 당시 63세이니 족보로선 형제이나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충분히 돌 볼 수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편 위의 이동구의 편지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용상은 1994년 5월 12일에 오레곤의 홀트아동복지회에 이동구 아버지의 비서라는 Mr. 안(이원만 회장의 개인 비서가 아파서 대신 온 사람)과 미국의 코오롱 지사장 Mr. 리와 함께 찾아가 $100,000을 주고 간 사람으로 당시 코오롱 가주 지사장이었다.
동구는 만나지 않겠다며 동구의 양부모를 만나 작성한 'Agreement'에는 자신들이 줄 '$100,000은 동구에게 주는 돈이기는 하나 유산은 아니고 단순히 동구가 잘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교육자금으로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또한 10만불을 수령하는 것으로 추후에 어떠한 법적인 권리도 주장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해줄 것을 요구하고 서명토록 했다.(이동구씨의 아버지 Martin Roach와 전용상씨 공동서명)
이에 홀트복지회 측에서는 신탁계정으로 예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측을 대신해 찾아온 그들 세 사람은 "어떠한 기록도 남길 원치 않으며 변호사가 개입되는 것도 싫으니 동구의 양부모를 믿고 주겠다"며 돈을 주고 떠났다고 한다.

◎ 홀트 오레곤에도 1만불 희사
코오롱 측은 1994년 5월 12일 홀트 오레곤을 방문, 이동구의 양부모에게 10만불을 주고간 후 한달이 조금 지난 6월 17일에 홀트 오레곤에 $10,000을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홀트 오레곤을 직접 방문, 전달한 것이 아니고 동구 일의 처리가 끝난 다음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체크를 보낸 것이다.
이와 관련 홀트 오레곤 측에서는 "그 돈은 동구 일 처리에 대한 감사라기보다는 홀트복지회가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보니 아동복지사업에 무엇인가 도움되는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달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피력하는 한편 "입양은 미혼모이거나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차선책이어야 하는데.... 이동구씨의 일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라는 말로 입장을 대변했다.

◎ 대리인 송대평은 오리발
이번 이동구씨 소송사건과 관련 그동안 코오롱 그룹을 대신해 이동구 변호사측과 연락을 주고 받은 사람은 코오롱 그룹의 가신에 속하며 부회장을 맡고 있는 송대평씨로 이동구씨를 대변하고 있는 김률 변호사측에게 다음과 같은 팩스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3년 2월 17일 오후 6시 30분에 김률 변호사에게 발송한 팩스의 주요 내용은 '이동구측이 제안한 중재제안에 대한 답변'으로 ".... 이원만 회장님께서 이미 작고하신 상황에서는 이동구씨가 고인의 자식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를 입증할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이에 대한 내용을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동구씨의 대리인이라고 하신 귀하께서 주장하시는 모든 내용에 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라고 적고 그 아래에 송대평 본인의 서명을 해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송대평씨는 지난 12월 14일 오후 3시 40분, 위의 사실을 확인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김률 변호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으며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동구란 이름은 신문에서 봤을 뿐이며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답했다.
한편 코오롱 그룹은 지난 11월 25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임원의 약 23%를 축소시켰는데 직급별로 송대평, 조왕하, 김주성 그룹 부회장과 사장 급에서 나종태, 조정호 등이 물러났다. 이와 관련 송대평씨는 "내 나이가 65세이다. 동구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연스런 정년퇴임"이라며 이동구와 관련해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코오롱 그룹은 본인의 뿌리를 찾고 그동안 감추어진 진실을 밝혀내려는 이동구씨의 간절한 노력과 소망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한편 DNA 테스트 요구에도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코오롱 그룹 소송 대변인인 David McDowell 변호사 조차도 "코오롱 측을 대변해 아무런 할말이 없다. 모든 것은 법정에서 공개될 것이다"라고 일축, 일체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구씨와 생모 이미연씨와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호에 계속 보도할 예정이다.
※ 이 기사는 미주신문인협회에서 공동으로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