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새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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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새흐름
  • 임영언
  • 승인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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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사카 코리아타운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 지역의 코리아타운을 비교함으로써 변화의 실체와 한류의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도쿄지역이 주로 뉴커머 중심의 소기업이 집중되는 것과는 반대로 오사카 지역은 올드커머들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이 대다수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 오사카 지역의 재일코리안들은 이쿠노쿠 지역 안, 미유키도오리, 쓰루하시, 이마자토신지를 중심으로 집주하고 있다. 이쿠노쿠는 대부분 제주도에서 밀항한 이민1세가 집주해 왔으며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헤푸샌들공장, 고무공장, 유리공장, 금속하청, 종이줍기, 고철줍기, 밀조(술) 등이 주요 직업이었다. 그러나 1989년 한국정부의 ‘해외여행자유화’ 이후 도일한 한국인들 가운데 연장자는 김치나 헤푸샌들 공장에 취직했으며, 젊은이들은 이마자토지역를 중심으로 유흥가로 모여들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사카교회, KCC(재일한국기독회관), 관음사라는 한글 간판이 눈에 띈다. 그리고 KCC 건물을 조금 지나 5분 정도 걸어가면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면 미유키도오리 코리아타운을 알리는 대형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의 특색은 업소 간판에서부터 금방 차이가 난다. 도쿄지역 쇼쿠안도오리나 다른 지역을 보더라도 한글간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아직도 일본어 간판이 많이 남아있다. 취급상품도 직수입한 식품류보다는 현장에서 손수 요리한 김치, 한복(손수제작), 제사상에 올라가는 육류(삶은 돼지고기, 족발), 불고기집(야키니쿠) 등이 주종을 이룬다. 대신 요리에 들어가는 각종 양념은 보따리 장사들을 통한 한국수입품을 주로 쓰고 있다. 소규모기업가의 80%가 제주도 출신으로 올드커머에 해당되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총련계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절반 정도가 한국적으로 바꾸었다 한다.

두번째로 재일코리안들이 많이 집주하고 있는 역 앞에 자리한 쓰루하시 지역은 일본인 상점가와 혼합되어 중충구조를 이룬다. 이 지역은 올드커머가 대부분의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올드커머와 뉴커머의 집주비율이 반반으로 뉴커머가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올드커머가 상권을 쥐고 있었는데 최근 뉴커머의 시장참여율이 증가하면서, 취급상품도 한국에서 직수입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세번째로 이마자토신지는 대부분 80년대 이후 진출한 뉴커머들이 개척한 지역이다. 원래 이 지역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집창촌이었으나, 뉴커머들이 풍속업, 크라브나 스나쿠(일본식 술집)를 중심으로 진출했다. 이 지역은 뉴커머가 도쿄지역에서 개척한 것과 유사한 업종인 크라브나 스나쿠, 에스테, 한국가정요리, 비디오와 식품점, PC방을 중심으로 상점가를 형성하고 있다.

소규모기업가의 특성으로서 미유키도오리는 올드커머, 이마자토는 뉴커머, 쓰루하시는 혼합형이라 할 수 있다. 쓰루하시나 이마자토 지역은 올드커머가 세운 상점가에 뉴커머가 가세한 지역이다. 미유키도오리는 대부분 올드커머가 집주하는 지역이었으나 최근까지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다가 작년부터 한류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한류가 이 지역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흐름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지역민과 공생프로그램, 한글학교운영, 한국수입 문화상품 판매, 한글간판의 증가가 뚜렷하다.

뉴커머기업은 세계화와 더불어 한국정부의 89년 ‘해외여행자유화’조치 이후 도쿄를 중심으로 취학생(일본어학교 학생)이나 유학생, 주재원들이 늘어나면서 탄생하였다. 뉴커머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국가정요리, 비디오나 식료품 가게가 주업종이었다. 중심고객은 스나쿠(스낵)나 크라브(술집클럽)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다. 이들은 일본어가 서툴기 때문에 일본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으며 자동적으로 한국음식이나 문화상품을 찾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크라브나 스나쿠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뉴커머소기업이 집중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일하기 시작한 뉴커머들은 당당한 한국인을 강조하면서 한국김치나 음식문화를 기업의 문화사업으로 연결시켰다. 뉴커머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음식은 김치에 들어가는 마늘냄새나 매운 고춧가루 때문에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다면 어떻게 뉴커머소기업가가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한국 음식, 특히 김치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일본인들에게 부정적인 한국의 음식문화를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하여 좋아하게끔 확장시켜 나갔다. 뉴커머들은 각 지역마다 식료품가게를 차려놓고 한국음식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갔다. 이제는 한류의 가세로 일본인 스스로가 한국음식, 문화상품을 즐겨 찾게 되었다.

뉴커머기업가는 국제화나 80년대 이후 일본 사회 전반적인 시대흐름에 잘 적응하면서 무조건 차별과 냉대를 받았던 한국 음식의 이미지에서 맛있고 깔끔하며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대형 한국음식점이나 식료품가게로 성공한 뉴커머기업가가 탄생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이나 한국과의 관계를 감추던 시대에서 한국의 맛과 문화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상품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러한 뉴커머기업가의 성공배경에는 일본이라는 차별사회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올드커머가 존재한다. 현재 뉴커머와 올드커머를 아우르는 ‘재일코리안’ 탄생은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뉴커머 증가나 한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연구에 의하면 올드커머 기업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에 뉴커머가 들어가 성공하는 사례가 적지않게 발견되고 있다.

재일코리안 조직은(총련이나 민단) 지금 커다란 해체위기를 맞고 있다. 한 예로 총련이 세운 학교가 학생수의 감소, 일본정부의 재정적 압박(세금부과) 등으로 폐교가 늘고 있다. 한때 총련계 초급, 중급, 고급학교가 많을 때는 150개 교였는데, 효율적인 자산운영을 위하여 통폐합 학교 증가, 주차장이나 용도 전용된 학교를 제외하면 100개 정도이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 조선학교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학생수 감소로 귀화자나 뉴커머의 입학허용, 교과서개편으로 조선이나 한국이라는 교육방침이나 구분보다는 우리나라 사람과 우리말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학교가 대부분 일본정부의 큰 지원이나 정식허가 없이 운영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애국애족심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일본정부에 공립학교에 준하는 교육지원을 계속해서 건의하고 있다. 민단도 마찬가지로 재일 2-3세나 귀화자 수의 증가, 조직의 매너리즘화로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

총련과 민단의 해체위기 속에서 등장한 것이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재일코리안’ 들의 문화운동이다. 총체적인 위기의식 속에 오랫동안 속박되었던 이데올로기, 차별에 매인 사슬을 끊고 경제와 문화를 모토로 과감히 상호수용과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세계화나 남북정상회담, 월드컵 공동개최, 한류 등으로 재일코리안들은 사상과 이념보다는 공생과 경제공동체 건설을 지향하는 새로운 민족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에서 작년 ‘겨울연가` 방영과 ‘욘사마(일본인들이 배용준를 부르는 존칭)’의 일본방문에 의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한류는 실제로 한국보다 일본에서 뜨거웠다. 혹자는 한류가 일시적으로 일어난 거품이며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 주장하지만 인기가 날로 일본사회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누구나 만나면 ‘겨울연가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욘사마’에 대한 열광은 여전하다. 뉴커머기업들은 이러한 현상에 쾌재를 부르고 있으며 인기가 반전되지 않을까 조바심마저 갖고 있다. 이러한 한류 덕택에 한국인이나 한국기업이 일본인들로부터 한단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기업 뿐만이 아니고 일본기업도 한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학원가는 한국어 인기로 한국어나 한국문화강좌 증설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관심사는 “왜 한국배우가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 라는 질투심에 가깝게 다소 황당해하는 눈치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한국배우에 대한 인기에 의아해하며 다양한 해석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가십성 기사가 지금 일본의 방송가의 논쟁거리이며 신문잡지의 중요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혹자는 한류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거품처럼 사라질 거라 한다. 일본에서 한류가 단지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다. 드라마에 대한 해석도 일본식 드라마 베끼기, 일본인의 잃어버린 노스탤지어 현상, 그리고 한국인 미남미녀 배우의 성형논란에 이르기까지 분분하다. 그러나 한류는 어느날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아니다. 한류가 불기까지 일본에는 거의 20여년간을 다양한 차별 속에서 피땀 흘리며 기업을 일구고 문화사업을 전개한 뉴커머기업가가 존재한다. 또한 지금까지 말없이 ‘재일코리안’의 인권운동을 전개해온 숨은 봉사자, 남북정상회담, 월드컵 공동개최가 한류와 직결되어 있다. 한류는 이러한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이 뉴커머가 주도해온 문화사업과 연결되면서 사회적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변화는 올드커머가 한류를 관망하는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달라지고 있다. 한류가 지닌 큰 의미는 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하여 재일코리안들이 경제와 문화을 중심으로 포괄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오사카에서는 재일코리안 사회의 변화에 따라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시민레벨의 다문화 공생사회 프로그램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한상과 네트워크 구축은 한민족 주체의 경제공동체 형성과 공생공존의 인류평화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코리아타운 중앙상점가에 작년 가을에 ‘이문화체험센터’ 을 개업하여 한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기업가 (덕산물산 H회장, 남자, 74세)의 인터뷰를 통하여 최근 오사카에 어떤 변화가 일고있는지 살펴보자.

“처음 어머니가 여기에서 시루떡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장사를 돕다가 한국 음식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주로 한국 전통식품이나 제수용품(제사에 쓰이는 물품)을 판매했다. 한국 전통식품 판매만 50년간 해오다가 지난해 회사를 법인화하여 덕산물산을 설립했다. 그리고 인근에 자체공장을 설립하여 냉면, 떡국, 김치를 제조하여 개인상점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최근까지 6남매 모두가 각 계열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슈퍼에도 덕산물산 식품코너를 개설하여 한국식품을 제공하고 있으며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이 지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인들에게 관혼상제나 명절 때 조선시장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 오면 재일코리안들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당시만해도 명절 전후 일주일간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때는 이 지역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대형 양판점이 등장하면서 조선시장이 점차 쇠퇴하고 올드커머들도 각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이곳은 올드커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서만 남게 되었다.

조선시장의 쇠퇴와 위기 속에 1993년에는 코리아타운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대대적인 재생운동에 돌입했다. 이쿠노쿠구청과의 타협으로 코리아타운내에 아치형 가로등 설치, 신문과 방송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냉대와 차별속에 성장해온 조선시장이 코리아타운으로 다시 태어나고 우리식 문화를 전달하는 이문화체험장으로서 탈바꿈하였다. 이곳은 10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조선은행이 부도가 나자 터를 매입하여 이익보다는 일본인들에게 우리문화를 전달하자는 취지로 이문화체험센터를 개설하였다.

2002년 10월부터 시작한 이문화체험센터를 통하여 한국문화, 전통음식을 일본인에게 소개하고 있다. 한국을 왕래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았지만, 특히 제일코리안 3-4세의 세대교체에 의해 민족적인 넋이나 혼이 허물어진다는 것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 1-2세대는 차별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는데 해방 후 사회적인 공헌을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에 건물을 구입하여 한국문화상품, 음식문화, 태권도, 장구(일본인)교실를 개설했다.

최근 한일 월드컵공동개최와 한류를 거치면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체험하고 싶은 일본인들이 계속 증가하여 김치 만들기, 한국요리교실, 한국어강습 등이 이 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은 일본인 소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문화(異文化)체험장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코리아타운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총련이나 민단간의 갈등이 심했는데 지금은 이념보다는 경제를 중시하게 되었다. 재일코리안 사회는 앞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를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일본인들과의 협력관계도 중요하다. 정치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생하는 사회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인과 재일코리안 간의 공생과 신뢰관계를 새롭게 구축하여 협조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족의 넋(혼)을 후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곳이 이념적인 좌우 충돌보다는 민단이나 총련 할 것 없이 재일코리안들의 교류, 행사장소로서 이용되기 바란다. 지금까지 한국의 문화나 역사, 생활양식의 우수성을 몰랐기 때문에 감추면서 생활해왔지만 앞으로는 이곳을 통하여 일본인과의 공생과 상호문화 이해의 장소로서 활용되어 공생사회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문화체험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이민2-3세나 일본인들에게 산증인으로서 코리아타운의 역사, 한국교포사를 설명해주면 학생들이 감격하여 편지를 보내오거나 김치 만들기 교실을 통해 학생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할 때이다. 이러한 조그마한 이문화교류을 통해 일본인과의 공생의 기초가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또한 일본 각 학교에서 이곳을 수학여행코스(중 고등학교)로 다녀가거나 한국요리를 통한 음식문화을 전달함으로서 단순히 ‘맵다’라는 선입관에서 ‘맛있다’ 라고 할 때 정말 기쁘다. 최근에 한국문화에 대하여 무조건 배타적이던 일본인들이 자녀들을 통하여 한국문화를 배우고, 이문화체험장을 방문할 정도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

전남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연구교수/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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