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태국 ‘비자 런’사태로 교민들 혼란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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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태국 ‘비자 런’사태로 교민들 혼란에 빠져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6.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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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응책 마련 촉구하는 청원서명도 잇따라,외교부 대책마련 시급

올해 1월부터 태국정부가 ‘비자 런’(visa run)을 정책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8월 12일부터는 전면 금지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약 3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태국 교민사회는 일대 충격과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비자 런’이란 태국거주 교민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비자를 발급받는 대신, 무비자 체류 허용기간이 되기 전,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잠깐 경유한 후 다시 재입국하는 방법으로 체류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자 런보다는 비자 클리어(visa clear)라는 말이 교민사회에서 더 익숙하다. 사실, 적법한 비자발급을 통한 체류가 아닌 사실상 편법에 가깝다. 하지만, 수십여년째 태국정부가 알면서도 묵인해 온 일종의 관행(?)이기도 하다.
▲태국이민청은 육로를 통한 비자 런은 전면금지하며, 대신 항로를 통한 비자 런 금지조치를 8월 11일까지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월 8일 발표했지만, 일부 교민들은 개인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에 최근 공항에서조차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사진은 캄보디아와 태국접경의 아란야프레텟)
태국 이민청은 현재 시행중인 90일의 무비자 기간이 관광 목적의 방문자에게는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만약 90일을 초과하여 태국에 장기간 체류하는 경우 이는 단순 관광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경제활동 등 다른 목적으로 태국에 체류하면서 무비자로 입국하는 사람에 대하여 입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국이민청은 지난 5월 8일 공식 홈페이지에 비자 런과 관련된 내용을 ‘한국인 및 기타 외국인에 대한 태국이민청의 입국심사 업무 안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공지했다.
 
"관광 목적이 아님에도 육로(국경지역)로 출입국을 반복하면서 태국에 장기 체류하려는 VISA RUN 형태의 출입국은 지금부터 허용하지 아니한다. 관광 목적이 아님에도 항공편으로 태국에 입국하려는 자에 대하여는 2014년 8월 11일까지 한시적으로 입국을 허용하며 (입국 시 체류 목적에 부합하는 정규비자를 취득하도록 경고하고, 여권에 별도의 스탬프를 날인함) 2014년 8월 12일부터는 육로(국경지역) 또는 항공편을 통한 VISA RUN 형태의 입국은 전면 금지한다"

태국이민청의 갑작스런 비자 런 금지조치는 '세수확보'와 더 이상의 '불법체류‘를 막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대해서 태국교민사회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다수의 교민들은 태국의 이번 조치가 한국출입국관리소의 태국인들에 대한 대거 입국거부에 따른 태국정부의 일종의 ‘보복성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지난 2013년 한국에서 입국거부된 태국인의 수는 8천여 명이 넘는다. 작년 태국입국이 거부된 한국인이 불과 1명이었다는 것과 견주어 보면 보복성 조치라는 교민들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게다가, 최근 태국이민청 소속 관리 역시 지난달 <방콕포스트>와 일요판 뉴스<스펙트럼>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도 교민들의 이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한국의 출입국 심사대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송환되는 태국인이 매년 8천명에 달하는 반면, 태국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한국인은 연간 20명에 불과하다. 한국과 태국은 관광객에 한해 상호간 무비자 90일 체류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이러한 특권을 악용하여 태국 내에서 일을 한다.

한국정부에 [보복성] 반격을 가하자는 정책은 파누 껏랍폰 이민청장의 의지이다. 한국이 우리 국민을 송환시키고 있으니, 우리도 한국인들을 입국거부하는 것이다.”
 
▲ 태국 수완나폼 공항 내부 전경(사진저작권 유정렬)
 
현재 태국한인회(회장 채언기)측이 추정하는 한국 교민수는 대략 30,000명선이다. 그 중 취업 비자를 취득한 태국주재원과 그 가족은 약 10,000명, 태국 내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유학 비자를 소지한 학생은 대략 4,000명으로 추산하며, 그 외 8,000명 가량은 정식 비자 신청없이 태국 입국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90일 관광비자(이하 무비자)로 장기 체류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1년 내지 2년 가량 단기 체류하는 한국인은 8,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태국한인회 김애영 사무실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제서야 부랴부랴 정식 비자 발급을 신청하는 교민들로 인해 비자 취득 정보에 혼선과 루머가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로 인해 “비자 신청 및 발급을 대신해주는 ‘비자 대행업체’들의 바가지 요금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태국 내 ‘관광가이드’ 업종에 종사하는 교민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무비자 상태로 장기체류 중이어서 그 여파가 매우 큰 상황이다. 한국계 여행사들과 관련 업종들도 충격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관광업계 신문에 따르면, 일부는 도산할 위험소지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당과 쇼핑센터 등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온 교민업체들이 당장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방콕에서 5년 넘게 관광가이드로 일해 온 이태석(가명)씨는 “한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왔기 때문에 고국으로 당장 돌아갈 처지가 못 되어, 조만간 이웃나라인 캄보디아나 미얀마 이주를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국한인회 측은 교민 사업체들 뿐 만 아니라 정식 비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개인들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다니던 학교가 알고 보니 태국교육청 인가를 받지 않은 학교로 밝혀져 유학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는 미성년 학생과 그 학부모도 있다.

당장 은퇴비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은행 예치자금이 없어 고민하는 노부부의 사연과 태국여성과 결혼, 아이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자 비자발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졸지에 가족 해체의 위기에 처한 한 가정 등 사연도 갖가지이다. 태국 이민청의 급작스런 비자 런 금지조치는 교민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현재도 후폭풍에 휩싸였다는 전언이다.
 
현재, 이와 관련하여 태국 내 교민들의 주 태국 대한민국대사관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7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청원을 올리고 대사관의 대응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이번 사태에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태국한인회에도 교민사회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외국정부와의 교섭능력이 없는 한인단체가 이민청 등을 상대로 어떠한 대응책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한인회 관계자는 말했다.
 
당장 대안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현재 우리 외교부에서는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해 수개월이 넘도록 어떠한 방안도 대책도 내놓은 것이 없다. 한인회와 공동으로 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형식적인 비자설명회를 2차례 갖고, 공지문을 통해 태국정부의 비자 런 금지조치를 알린 것이 전부다.

비자 런 금지조차 유예기간 연장을 위한 차선책을 강구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정부에 대한 교민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가고 있고, 태국정부가 발표한 비자 런 금지 기한 날짜는 불과 2개월 이내로 점점 임박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