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수기] 엑소더스(EXO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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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수기] 엑소더스(EXODUS)
  • 김진규
  • 승인 2013.01.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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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메이니아 산불 속에서 일등 나라, 일등 국민의 모습 보았다"

[※편집주=얼마 전 한국에서 호주를 방문한 김진규 씨가 태즈메이니아(Tasmania) 산불재해 발생 당일, 현장 인근에 들렀다가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본지에 보내왔다.]

필자가 현재 거주하는 곳은 호주 멜버른(Melbourne)에서 500km쯤 떨어져 있는 한반도 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섬, 태즈메이니아 주의 주도 ‘호바트’(Hobart)라는 곳이다. 이 섬의 인구는 고작 50만 명. 특히, 넓은 땅에 대자연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 호주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 노후에 살고 싶은 곳 1위며, UN으로부터 세계 7대 원시림으로 지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호바트는 태즈메이니아 남쪽 가장자리, 우리나라로 하면 진주나 광양쯤에 있는 항구 도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빽빽하게 서 있는 도로와 캥거루 종류의 유대류(배 밖에 새끼를 키우는 주머니를 가진 동물)가 10km쯤 달려 온 길에서 10여 마리의 로드 킬(차에 치어 죽은 동물)로 발견되는 야생 동물의 천국, 야간에는 이들을 먹으려고 등장하는 또 다른 야생동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들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차가 크게 파손되기도 한다.

1월 4일, 예상기온(39도)을 향해 아침부터 덥다. 햇빛은 공기가 맑아 따갑고, 외출할 때는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이 필수인데 느끼는 더위는 의의로 깔끔하다. 건조해서 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셔도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딸이 알바를 하는 카페가 오늘 휴무다. 너무 더운 날은 사람들이 시내에 잘 나오지 않아 영업이 별로라 쉬는 게 낫단다. ‘포트 아서’(Port Arthur)라는 곳에 가기로 했단다. 사장님 네 가족들은 새벽에 먼저 출발해 고기도 잡아 놓고, 수영도 하며 전복도 따놓기로 했단다.

딸이 10시에 잠깐 학교에 볼일을 보고 왔다. 우리 집에 같이 있는 한국인 여학생 자매와 넷이서 딸이 운전해 출발, 포트 아서라는 데를 찍어 보니 108km, 도착 예정 시간 12시55분, 현재기온 35도. 우리나라로 치면 진주에서 동해안인 울산 쪽으로 가는 것이다.

낮 12시쯤, 깨끗한 공기를 마시려고 열어 놓은 차 문으로 매캐한 냄새가 들어왔다. 연기다. 먼 산에서는 연기가 여러 군데 피어오르고… 산불이다! 경찰차가 분주하고, 소방차와 소방헬기도 보였다. 20분쯤 더 가니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 우리가 가는 방향은 안전하다며 통과시켜 줬다. 여전히 산 쪽에서는 연기가 보이고, 냄새와 함께 간혹 바람에 실려 온 재도 날렸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로 해수욕장도 많고, 캠프장, 보트장 등 20여km에 걸쳐 있는 여기서 어떻게 찾을까 걱정 했는데 15km쯤 순환도로에 아이를 세워둬서 만날 수 있었다. 낚시도하고, 전복을 비롯해 잡은 생선들을 회로 먹고, 햇볕 좋은 바위에 말려서 이동, (취사가 지정 된 곳이 아니면 불을 못 피우므로) 바비큐 시설이 되어 있는 캠프장, 산불 때문에 바비큐 세트 전기 공급 중단, 가져 간 부스터에 라면을 끓이고, 과일, 빵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3시 반쯤, 물을 받으러 간 자매가 황급히 돌아왔다. 호바트로 돌아가는 모든 길이 통제 되었으니 여기서 해제될 때까지 가다려야 한다는 것. 주차장에는 200여대의 차가 서있었고, 줄 잡아 600명이 고립됐다. 사무실 안내 데스크로 가 보았더니, 공고문이 나 붙었다.

“산불 때문에 모든 차량은 호바트 쪽으로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시간부터 여러분이 있는 여기가 임시비상대피소로 지정됐으니, 여기를 떠나지 마십시오.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습니다. 모든 시설은 지금 이 시간부터 무료로 개방됩니다. 질문은 차례로 해 주십시오”

현재 산불로 인해 50여 채의 집이 소실됐으며, 소방관 2명 순직, 민간인 사상자는 없고 이로 인해 여러 곳의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근데 이상한 일이다. 당국이나 시민들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너무나 차분했다. 한 쪽에서는 임시 테이블이 설치돼 일행 중 대표가 가서 인원 명단과 연락처를 신고했다.

음료수를 제공 받는 곳의 줄도 물통이 2개로 늘어나자 줄이 아주 짧아져 2~3분이면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2리터 정도 되는 우유 통을 화장실에서 씻어 와서 물을 반보다 조금 넘게 받고는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기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뭉클 해 지고 코끝까지 아렸다. 일등 나라의 일등 국민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상상해 봤다. 고함소리와 항의, 어떻게든지 나가 보려고 꾀를 쓰거나 얌체 짓을 해 보려는 자, 관리소 내에 있는 식당은 안전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공고한 대로 3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포터 아서의 문이 열렸다.

수천 평(잠실 메인 스타디움의 5~10배 크기)의 파란 잔디와 언덕 여기저기에 19세기의 건물들이 더러는 무너진 채로 잘 보존돼 있었다. 지붕이 허물어져 사라진 화강암 벽돌의 교회와 옛 모습을 간직한 파란 청동녹이 아름다운 8개의 차임 벨(1836년 건축), 그 이웃에 있는 100년 된 교회에 들어 가 보니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 된 성경이 펼쳐져 있고, 베토벤 영화에서 본 듯한 옛 피아노가 지붕이 허물어 져 있는 원래의 교회에서 놓여져 주인을 찾지 못해 외롭다. 당시의 정부청사와 영국에서 유배 온 자들이 죄를 짓고 복역 했던 태즈메이니아 감옥, 잘 가꿔 진 정원, 돗자리를 잔디 위에 깔고 나무 그늘에 누웠더니, 집에 가야한다는 걱정은 온데간데없고, 졸음이 몰려 왔다. 카페 사장님은 새벽부터 얼마나 피곤했으랴… 금방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저녁 8시쯤, 긴 여름해가 기울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이 넓은 잔디광장을 다니며, 신고하지 아니한 사람을 찾고 있는 소리가 요란했다. 뭔가를 먹어야 했다. 건물 카페에 우리 일행이 올라가 보니 음식은 다 팔렸는지 먹는 사람이 없고, 맥주나 음료수를 사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50석은 족히 됨직한 식당은 휴식 공간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듯했다. 우리 8명의 일행에게는 라면 2개, 삼겹살 2근, 쇠고기 한 덩이와 야채, 물, 들어오기 전 반대편으로 나가서 사온 얼음이 있었다.

처음 만났던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비상상황이라 취사금지 규정을 지킬 수 없었다. 도로에서 한참 떨어진 비탈길을 내려와 불을 피웠다. 고기를 굽고 라면도 2개 다 끓이고, 내내 피곤해 하던 딸이 “먹으니까 정신이 빠짝 든다”며 기운을 차렸다. 먹는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두워졌다.

밤 9시20분. 내려온 비탈길을 핸드폰의 라이트로 비추면서 차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밤을 어떻게 보낸담, 여기는 안전할까? 오는 길에 밀물이 들어 보트 선착장에서 밤 오징어 낚시를 해 볼까 해서 ‘화이트 비치’라는 데를 가보았다. 희미한 달빛에 넓은 백사장은 끝이 보이지 않게 아름답다. 선착장을 찾아가 보았으나 아무도 잡은 사람도 없고, 불빛을 보고 몰려오는 오징어 습성에 필수 조건인 밝은 가로등이 없어 할 수 없었다. 현재 상황이 궁금했다. 뉴스는 들을 수 있지만, 우리의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포터 아서’ 뿐이다. 어떻게든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방법을 찾기로 했다.

밤 10시 30분, 포터 아서는 전원 공급이 끊겨 비상 발전기 소리가 요란하다. 주차장 가로등은 꺼져 있었고 자동차의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주차, 계단에는 석유램프가 군데군데 놓여지고, 램프에 촛불을 넣어 밝힌 등도 가끔 보였다. 안내소에도 인원이 증원돼 2명이 응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침구를 반납하고 있었다. 매트리스, 이불, 담요, 베개를 안고 와서는 정해진 자리에 쌓아둔다. 우리 일행이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누어 줬던 것으로 생각 되는 침구류가 반납 되고 있는 것은 분명 상황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문의 결과, 여기에서 10km쯤 떨어 진 ‘퍼슨 베이’ 항구에서 호바트행 페리가 마련 됐으며 퍼슨 베이까지는 버스로 가게 되며, 12시에 출발하는 페리까지의 모든 비용이 무료이며, 차는 여기에 두고 산불로 인해 통제된 길이 열리면 본인이 와서 가져가게 된다고한다.

밤 11시, 아기를 동반한 아주머니, 노인 등의 순서로 버스에 오르는데,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퍼슨 베이 선착장, 12시가 넘었는데 우리를 실어갈 배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모두 조용히 기다리며, 키가 큼직한 경찰관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차의 시동을 걸어 조명을 비춰줬다. 갑자기 모두 웃었다. 무슨 일인가하고 딸에게 물어 보았더니, 어떤 여성이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찰관이 어두워서 찾기가 힘드니, 잠시 참고 있다가 배가 들어오면 먼저 태워 드릴 터이니, 배에서 해결하라는 말에 모두 웃었단다. 드디어 배가 들어 왔다. 화장실이 급한 서너 명의 여성들이 먼저 타고, 버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부터, 차례차례로… 우리 일행이 배에 올랐을 때는 좌석은 이미 차고, 통로에도 앉거나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밤 12시 35분 퍼슨 베이를 출항한 페리는 밤바다를 달려 호바트로 향했다. 한 쪽에는 반쪽 달이 구름에 걸려 있고, 정남향을 알려 준다는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이 유난히 밝다. 반대편 산등성이 너머로 자욱한 연기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는 모습은 산불이 예사롭지가 않은 듯하다. 흔들리는 배 바닥에 앉았더니 딸은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2시를 넘기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오면서 줄곧 보이지 않던 불빛들이 이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안면이 있는 모습, 태즈메이니아 다리의 조명이 눈에 들어 왔다.

밤 2시 20분, 호바트 살라망카 항구에 배가 닿았다. 출구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저쪽 안쪽에서, 또는 2층 편안한 객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그들은 택시 기사. 온 도시의 택시가 다 대기하고 있는 듯 했다. 200여명의 승객 중 거의 마지막에 내린 우리 앞에도 금방 택시가 섰다. 첫 마디가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포터 아서에서 산불 때문에 길이 막혀 이 시간에 배편으로 차를 두고 몸만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택시가 이 분들을 우선으로 무료운행을 해 주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가는 곳이 어디 지요? 오늘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무료입니다” 15~20불을 아꼈다는 생각 보다는 오늘 오후부터 우리에게 일어 난 일들과 이 호주라는 나라가 국민들을 얼마나 중요시하며, 일등 국민으로써의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들을 보게 돼 행복했다.

우리 딸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아빠,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오늘 오후 큰 어드벤처를 경험하고… 어땠어?”

“참, 사람들이 좋았다. 일등 국민, 일등 나라”

오늘 120년 만에 기록한 호바트의 41.9도, 더위는 긴장 때문에 느낄 수 없었고, 주위의 일들로 아주 따뜻했다.

[호주=김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