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인연구의 중요성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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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연구의 중요성과 방향
  • 임채완
  • 승인 200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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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
세계적으로 재외 동포의 정치경제적 역량을 본국의 정치, 경제적 발전과 국가발전에 유효하게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중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인도 등의 국가이다. 우리와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은 전세계 화교를 개혁․개방 정책에 끌어들여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1978년 이후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약 70%가 화교자본일 정도로 화교(華僑)들은 중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연간 6~8%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세계화상(華商)의 대중국 투자와 무역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룽지 총리는 2001년 9월 난징(南京)에서 개최된 ‘제6차 세계 화상회의’에서 세계화상들의 투자와 무역이 경제성장에 막대한 기여를 했음을 지적하고, 이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세계화교조직은 약 9,500개인데 아시아의 6,500개, 미주의 2,500개 조직이 화교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해외 화교들 또한 ‘국제화교협회’, ‘세계화상대회’ 등 전세계 중국계 기업간 기구와 회의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를 연결하는 인터넷망을 운영하여 화교들간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 136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화교의 수는 약 3,000만명(대만 2,100만명 제외)인데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며 거대한 경제력으로 동남아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현재 대중화경제권은 대만의 제조기술, 싱가포르의 마케팅과 서비스, 중국의 노동력, 북미의 전문인력과 기술력이 전세계 화교자본과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예를들면 인도네시아 인구의 3%에 불과한 화교가 200대 기업 가운데 160개를 차지하여 1998년 폭동사건 전까지 민간자본의 80%를 장악했으며, 태국에서는 전인구의 10%에 불과한 화교가 상장기업의 80%, 10대 재벌가운데 9개, 그리고 4대 은행을 점유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전인구의 2% 미만인 화교가 100대 기업의 3분의 1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된 세계 화상네트워크의 유동자본은 매년 3조달러에 이른다. 동남아 화인 2,000만명의 개인재산은 2,000억 달러를 넘으며, 동남아 지역 1,000개 주요 기업 중 517개가 화상기업이다. 1979-91년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의 80% 이상은 화교자본이었으며, 1992년 이후에도 화교자본의 중국투자비율은 여전히 6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렇듯 화교자본은 중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600만 규모의 재외한인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그 시사한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
현재까지만 보면 인도는 중국과 이스라엘 보다 해외 동포를 자국의 정치, 경제발전에 적절히 활용한 시기가 짧고 정교하게 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지만, 세계 70여개국 이상에 약 2천만명의 재외 동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는 1990년 들어 이들 재외 인도인의 정치, 경제적 잠재력을 자국 발전에 활용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 금융 등의 부문에서 인도계의 전문가 집단이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인도에 하청기업을 만들어 인도의 고용창출과 자본 축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재외 인도인 사회의 안정과 정치, 경제적 성공은 모국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커서 세계경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1년 현재 재외 인도인의 연간 수입은 인도 국가의 총생산액에 근접한 미화 3천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특히 IT산업부문에서는 세계적으로 재외 인도인이 압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실리콘 벨리는 인도인 성공의 대표적 사례인데, 이 지역의 창업기업 10개 중 4개가 인도계의 소유이며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약 1/3이 인도계이고 이곳 첨단기술기업의 7%가 인도계 CEO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과거 빈곤과 후진성의 상징 그리고 각종 국제기구의 원조대상국에 불과했었던 인도가 점차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바, 이는 재외 인도인의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2001년 6월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지( Boston Globe)는 2025년에 달하면 인도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총생산의 13%를 차지하는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사실상 인도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극심한 경기침체로 고전하던 1997~98년에도 5%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인도의 2003년도 경제 성장률도 5% 수준에 육박했는데 세계경제의 침체에 비교하면 이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오랫동안 저성장국으로 인식되던 인도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고전하면서 안정성장 국가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도가 뛰어난 국내외적 인적 자원을 가진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국가로 급부상하는 요인의 하나가 바로 재외 인도인 사회와 본국과의 공생적 관계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 외에도 최근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 인도에 관한 국제 정치적 중요한 이슈에 대해 인도에 유리한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도 재외 인도인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3.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태인 숫자는 1,400만명으로서, 이 가운데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460만명을 제외하면 940여만명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분포면에서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으로서 50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해외 거주 유태인들은 세계유태인총회(WJC), 세계시오니스트기구(WZO) 유태인협회(JA) 같은 각종 유태인 네트워크를 통해 유태인의 본국 이주 및 본국의 국익을 지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유태인 네트워크는 1936년에 출범한 WJC(World Jewish Congress)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WJC는 80여개국에 산재해 있는 유태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구로서 각국 정부 및 국제기관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여 유태인을 위한 외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사령탑 구실을 하고 있다.
미국 유대인협회(AJC)는 미국의 정계에 수많은 인맥을 두고 UN 총회에 참석하여 의사 발언을 할 정도로 힘이 있는 미국 내 최대 유대인 단체 중에 하나이다. 이들은 정치력 신장을 통한 유대인의 권익보호와 이스라엘과 미국간 관계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AJC는 국제관계, 민족간의 관계, 사회 이슈, 그리고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까지 전세계 유대인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한 활발하고도 힘있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태인 공동체 네트워크망을 통해 형성된 전세계 유태경제권은 4조 8,0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미국 연간 GDP의 60%, 이스라엘 연간 GDP의 50배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특히 미국에서 유태인 사회는 언론계, 금융계, 문화계를 석권하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들은 이런 힘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의회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여론을 움직인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유태인들로부터 등돌림당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없을 정도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이를 세계 최초로 승인한 나라도 미국이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자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최초로 선언한 나라도 미국이다. 그런가하면 해외 유태인들은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돈과 로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전쟁에까지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명성을 발휘하는 것도 이스라엘과 같은 소국가가 정보 전쟁에서 대국 노릇을 하는 것도 전 세계 유태인들이 가진 조국애의 산물이다.

4.
그렇다면 해외 이민 100년사를 맞이하고 있는 한민족의 실태는 어떤가?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재외한인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가? 한국은 재외한인을 민족문화의 우수성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가? 참여정부가 핵심국가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추진’에서 그들의 역할을 어떻게 부여하고 있는가? 한국은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이들의 매개체적 역할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은 재외한인의 인권, 교육, 여성문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재외한인의 분산과 집거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외교통상부 발표에 의하면, 재외한인은 2002년 현재 142개국에 약 600여만명이 분산되어 있는데 그 중요한 특징은 미국(206만명) 중국(204만명) 일본(66만명) 러시아(49만명) 등 이른바 주변 4강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외동포 10명 가운데 9명이 주변 4국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4강 집중 분포도는 구한말 열강들의 한반도 침탈과 민족 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화 시대의 한민족에게 새로운 웅비의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2003년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은 600만 규모의 재외한인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미국의 국제경제연구소(IIE)에 의뢰하여 그 평가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고 자료에 의하면 600만명에 이르는 재외한인의 자산가치는 국내총생산액(GDP)의 1/4에 해당하는 1천2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하였다. 『세계경제에 있어 한국 재외동포』라는 책으로 묶어 올해 1월 출간된 이 연구결과는 재외동포가 본국 수출의 16%, 수입의 14%를 차지하며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우리의 재외동포는 이러한 경제적 가치이외에도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학술적 측면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화상(華商)들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대중화경제권’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을 보면서, 세계에 거주하는 600만 규모의 재외한인들도 한민족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산으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성장에 6천만에 이르는 화교들의 경제네트워크인 ‘세계 화상(華商)총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과 같이, 한국도 세계 150여 국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한상(韓商)네트워크로 조직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 한민족공동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5.
한국에서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재외한인에 대한 연구는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기초조사나 종합적인 접근이 매우 미미한 상태이다. 그 동안 한국정부가 추진해 온 한민족공동체 내지 한민족네트워크 사업은 정확한 개념 설정과 주체 및 목표 등에 대한 이론적 천착이 부족했고, 국민적 합의 기반도 취약했다. 또한 재외한인 사회 전반에 대한 학문적 기초조사가 미흡하고, 학문분야간의 문제의식이나 접근방법이 분산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재외한인에 대한 기존의 평면기술적 내지 단편적 접근을 탈피하여 보다 심층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의 종합적․유기적인 학제간 연구를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재외한인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는 지식정보시대에 적합한 민족발전의 실체로서 ‘세계한민족공동체’ 구축을 위해 ‘한상(韓商)네트워크’와 ‘한민족문화공동체’에 관한 기초자료들을 발굴․생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연구방향은 이러한 기초자료들을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경제․문화네트워크 형성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계한민족공동체의 중심 축이 될 세계 한상 네트워크와 한민족문화공동체에 대한 앞으로의 기초조사는 기초학문 발전과 함께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사회과학분야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것이며, 한민족 발전을 위한 국가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또한 한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