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로써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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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로써 간청합니다’
  • 월간 아리랑
  • 승인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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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아리랑 arirang21@arirang21.com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특별법’제정을 요구하며 이금주(84세, 태평양희생자광주유족회)회장은 29일 유서를 남기고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이금주 회장은 다음까페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게시판에 ‘법사위의원들께 드리는 유서’를 남기고 일제하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으로 살아온 세월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글을 올렸다.



유서에서 이회장은 23세 때, 만 2년만에 남편을 일본전쟁에 빼앗긴 후 61년을 살아왔다며 남편의 주검을 가슴에 묻은 채 미망인으로 한 많은 세상을 살아왔다고 밝히며 이제 84세의 노인으로써 남편의 명예회복을 지켜봐야 죽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격한 감정을 표하였다.



현재 특별법은 30일 2시 본회의가 끝나고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심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등에 관한 특별법제정 추진위원회’의 최봉태 추진위원장은 “이번에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법사위원들이 얼마나 심도있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지난 2월 일본국회에서도 관련법 요청을 만장일치로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 국회에서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금주 회장이 법사위 의원들에게 드리는 유서 전문이다.






법사위 의원들께 드리는 유서




나는 23세 되던 해 만 2년의 결혼생활 중에 남편을 일본전쟁에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후 남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후 61년. 죽고 싶어도 아들 때문에 죽지 못하고 나는 남편의 주검을 가슴에 묻은 채 미망인으로 한 많은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죽은 남편의 뼈도 찾지 못했습니다.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낯선 섬 타라와에 남편의 뼈는 수 천명의 미국인, 일본인들의 뼈와 함께 발길에 차이는 하얀 돌멩이처럼 어디엔가 흩뿌려져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조선인 전몰자를 위해서는 처음으로 타라와섬에서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그 때가 남편과 헤어진 후 50 년만에 남편을 가장 가깝게 만났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84세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숨도 가쁘고 얼굴은 남편과 헤어지던 23세의 뽀얀 피부의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이 주름으로 가득 찼으며 언제 죽을 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죽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던 남편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보고서야 죽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입니다. 태평양전쟁 때 희생되었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원혼과 함께 나의 원혼도 구천을 떠돌며 조국의 무심함을 한탄하고 울면서 편히 쉬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를 이끌고 일본에 전후처리와 공식사죄, 배상청구 등의 재판을 회원들과 함께 해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고 슬퍼하고 한탄하면서 한배를 타고 지금껏 왔습니다. 우리 노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무심한 조국이 우리에게 한 뼘만큼 가까이 귀를 기울일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조국은 여전히 냉정했습니다. 우리 노인들이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아프고 지친 노구를 이끌며 청와대를 찾아갔을 때도 우리를 냉대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우리 유족회원 여럿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월례회 때 지난 달 보다 더 구부러지고 더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모여서 “우리 절대 이렇게 죽으면 안 됩니다. 명예회복이 되는 것을 보고 죽읍시다.”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내 손녀는 예의도 없이 월례회에 쳐들어와서는 “어르신들 아프시면 안 돼요. 절대로 건강한 모습으로 어르신들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보셔야 돼요!”라고 버릇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으름장을 놓고 우리 노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힘없이 “그래. 그래 걱정 말아. 우리, 법이 제정될 때까지 절대로 안 죽을게.”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원님들, 우리는 일제시대 때부터 너무나 사람대접을 못 받고 살았습니다. 징용에 끌려갔던 사람들은 살육장에 끌려간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남은 가족들은 징용에 끌려간 혈육을 그리다 미쳐서 죽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손가락질 받고 살았습니다. 구걸을 하다가 칼부림을 당하기도 하고 친척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모의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한겨울 맨발로 도망쳐서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이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이 된 이후에도 우리가 겪었던 시름에 대한 위로는커녕 계속해서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재판을 위해 일본 법정에 서면서 “사죄하라! 내 아버지 돌려 달라! 내 다리 돌려 달라!”고 얼마나 목이 터져라 외쳤는지 징용에 당한 우리 자신과 우리 혈육이 불쌍하고 우리 인생이 서러워서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왜 우리의 조국은 우리를 이다지도 모른 체 하는 것입니까? 왜 아직까지도 우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돌보아줄 법안 하나를 제정해주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혈육이 일제침략전쟁에 의해 입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입니다. 이를 실현할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특별법)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노인네들이 빨리 죽어 없어져서 세상이 조용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 법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각, 나는 이 법안이 제정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유서로 남기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이 법안을 제정해 달라고 대한민국, 바로 나의 조국의 국회의원들께, 법사위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하겠습니다.




의원님, 우리는 일본침략전쟁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들을 잃었고, 누이를 잃었고, 딸을 잃었으며, 형과 아우를 잃었습니다. 우리 자신은 살아 돌아왔더라도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과 약속에 신음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은 “아프고 낙이 없어 죽기만을 바란다.”고 합니다.




16년간, 나는 그들이 ‘조국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리라.’는 희망을 잃지 말기를 재촉하고 용기를 주곤 하였습니다. 이제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우리 회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써, 그들의 시름을 달래고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이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 주시기를 의원님들께 유서로써 간청합니다.




우리 회원들, 나를 믿고 말없이 따라와 주었습니다. 법정에 서서 “한일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기각을 듣고 실신을 하면서,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유골 앞에서 군소리 없이 나를 믿고 말없이 따라와 주었습니다. 나는 우리 회원들 모두가 아무런 정부의 조처없이 이대로 저 세상 사람이 되도록 결코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원님들께 유서로써 하소합니다. 이제 우리 노인들의 슬픔과 아픔을 거두어 주십시오. 더 이상은 우리를 방치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노인들도 사람이고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진정 이 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 노인들을 위해 이 법안을 제정해주십시오. 나의 마지막 소원이자 우리 일제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노인들을 위한 단 하나의 간청입니다. <통일뉴스 오인환 기자>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이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