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포가 들려주는 이준 열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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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포가 들려주는 이준 열사 이야기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2.01.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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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터줏대감 이기항·송창주 부부
‘강소국 네덜란드와 이준 열사 이야기’ 펴내

네덜란드 이민 40년. 네덜란드 동포사회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과 송창주 이준열사기념관 관장 부부가 수필집 ‘강소국 네덜란드와 이준 열사 이야기’를 펴냈다.

한-네덜란드 수교 5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저서에는 네덜란드에서 직접 살아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상세한 현지 정보와 더불어 유럽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의 이야기, 이준 열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동포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곳을 방문한 뜻밖의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72년 초 인삼과 합판 등의 샘플을 들고 네덜란드로 가 유럽 시장을 상대로 ‘세일즈 코리아’에 나섰던 초창기 산업 역군 이기항씨 부부. 네덜란드 최초의 한인공동체인 한인교회 창립과 네덜란드 한인학교 개교에 기여한 그들은 이제 네덜란드에 새겨진 조국의 험난했던 역사를 매만지며 뜻깊은 사업을 실천하는 데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강소국 한국과 네덜란드가 힘겹게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했다”는 저자 부부는 “우리 선열들이 어떻게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기항·송창주 부부에게 헤이그는 각별한 도시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제 2의 고향인 탓도 있겠지만, 그곳이 한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역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준 열사의 고난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헤이그에는 고종황제의 밀서를 전달하고자 헤이그 땅을 밟았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한 이준 열사의 대의가 새겨져 있다.

저자는 “1907년 헤이그의 이준, 1909년 하얼빈의 안중근에 의한 이토 처단, 1919년 국내에서의 3·1만세운동, 1945년의 해방까지 한국 독립운동의 큰 흐름에 눈을 돌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곳곳에서 불거졌던 독립운동의 주요 시점들의 시발점이 헤이그에 찍혀 있다는 것이다.

헤이그에는 현재 1993년 설립된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대표 이기항)가 주축이 돼 개관한 이준열사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저자들은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과의 추억을 전했다. 특히 북한 동포들이 방문한 이야기는 눈길을 끈다.

“자신들을 북한의 가금업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 4명의 북한 동포들이 2007년 11월 7일 가슴마다 빨간색의 김일성 배지를 부착하고 이준열사기념관을 찾았는데, 매우 반가웠다.”

저자 부부는 남과 북이 다를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준 열사로부터 분단의 현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한민족의 동질감을 읽어낸다. “그들(북한동포들)이 이준 열사를 존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하는 저자들은 좀 더 자유롭게 북한동포들과 교류해 역사를 써 나갈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1997년 ‘한민족평화제전’이라는 이름으로 헤이그 추모식을 거행하는 과정에 고 김수환 추기경과 맺었던 인연 역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우리시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김수환 추기경이 이 제전에 참석해 평화의 메시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헤이그 선언’을 낭독해주시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보낸 팸플릿에 흔쾌히 참석을 알려왔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뜻깊은 에피소드가 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