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넘어 한·일 파워그룹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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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넘어 한·일 파워그룹으로 성장”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11.1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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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코리안, 현재를 본다]' 재일동포의 어제와 오늘' 국제학술회의

“재일동포는 1910년 8월 일본의 한반도 강제병합에 의해 시작된 식민지지배의 역사적 산물이다”

김성수 한양대학교 교수의 설명이다. 해방을 맞아 210만명에 이르는 재일동포가 귀국했지만 현지에 잔류한 한인도 50만명이 넘었다. 오사카 국제대학 엔도 마사다까 교수는 “총사령부는 정당하게 설립된 조선 정부가 그들(재일코리안)을 조선 국민으로 승인해 줄 때까지는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전한다. 1946년 11월의 일이다. 사실상 이때 재일코리안에게 부여된 일본 국적은 식민통치하의 내부 차별적 국적관리 기준에 근거한 것으로, 일본 정부는 1947년 서둘러 외국인 등록령을 마련해 재일코리안에 대한 관리기준을 적용했다. 이 등록령은 재일코리안을 ‘조선 호적령의 적용을 받아야 할 사람’, 즉 ‘외국인’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조국의 정부가 언제쯤 안정화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중간인으로 재일코리안의 정체성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때쯤이다. 아래의 내용은 지난 9일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재일동포의 어제와 오늘’에서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일코리안의 지위와 과제를 정리한 것이다.


호적법 차별에 ‘울고’

피에 근거한 일본의 호적법. 그것은 내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는 엄격한 잣대이자 일본식 이름으로의 개명이 요구되는 등 일본 정부가 외국인을 상대로 펼쳤던 철저한 동화주의의 근간이 됐다.

엔도 마사다까 교수는 “1946년 총사령부는 호적법의 개정을 일본 정부에 지시하며 원래 호적은 개인의 신분 관계의 공증이 목적인 이상 가계 폐지를 철저히 하고 개인 단위로의 등록제도로 고치도록 제안한 호적법은 일본인에게만 적용해 외국인을 배척하는 제도라고 사법부를 추궁한 것에 대해 사법부에서는 호적이 일본국적의 증명이라며 이에 저항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의 호적법은 전면개정이라는 미명 하에 폐지를 면했다. 호적법에 따르면 전후 일본에 체류한 대만인, 조선인 등 외국인들은 자국의 독립과 함께 일본 내의 외국인이 되는 것이었다. 마사다까 교수는 “평화 조약발효의 시점에서 조선 호적 또는 대만 호적에 입적하고 있는 사람은 조선인 또는 대만인의 지위에 있었다”며 “호적주의에 근거한 이러한 국적처리는 사실상 법치주의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수십만명에 달했던 재일코리안 상당수가 국적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본에 체류하며 재일동포사회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원인이 됐다. 마사다까 교수의 질타대로 “호적이라고 하는 식민지 시대의 질곡에 조선인은 전쟁 이후에도 속박돼 왔”던 것.
재일동포 출신인 김웅기 홍익대 교수는 “왜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일본 내 한인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많이 생각해왔다”며 “재일코리안은 일본에서는 소수자이자 무권리, 중간인 등으로 불렸고 모국에서도 불신을 받는 대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지방참정권 없어 ‘또 울고’

외국인으로서의 재일코리안에게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지방참정권 등 기본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김봉섭 3·1운동위원회 회장은 “(일본)민주당과 함께 지방참정권 획득에 올인했던 민단은 최근 민주당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입장으로 선회하며 동력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난해 일본 내 한인사회와 일본 정부의 유력 정치권 인사들과의 금품스캔들 가능성이 대서특필되면서 재일동포들의 보폭이 위축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외국인 등록제도 개선과 함께 지방참정권 획득 문제는 민단을 위시한 재일한인사회의 숙원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재일코리안의 지방참정권 획득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 발족 이후 특별영주자인 재일코리안이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중국인 출신의 영주권자가 급속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이상현 쓰쿠바대학 교수는 설명한다. 참정권 획득 논의가 ‘중국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위협론에 근거한 ‘반 참정권 부여’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상당수의 재일동포들이 일본으로 귀화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65주년을 맞은 민단은 올 초 차세대의 결속과 정체성 확립 등을 내부적 과제로 규정한 바 있다. 젊은 층의 귀화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지방참정권 획득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지방참정권 획득 문제가 변함없는 재일코리안 내부의 최대 과제라는 점에 이견은 없어 보인다.

이제는 웃어볼까

일본 정부는 2009년 7월, 입국관리법을 손질해 외국인 주민을 일본인과 동일하게 주민기본대장법 적용대상으로 추가하는 법령 개정을 처리했다. 이어 2012년에는 외국인에게도 주민표를 발행해 사실상 그동안 재일조선인들에게 적용됐던 외국인 등록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일본 내 외국인에게는 ‘재류카드’가 발급되며 특별영주자는 기존 외국인등록증명서의 기재사항이 대폭 축소된 ‘특별영주자증명서’가 발행된다. 이 증명서를 소지한 특별영주자는 출국 후 2년 이내 재입국할 때 재입국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어진다.

강윤모 재외동포재단 차장은 “외국인등록법 폐지나 지문날인 철폐 등의 변화들을 이끌어낸 것은 일본 사회의 인식이 변화된 때문이 아니라 재일동포들 스스로가 의지를 갖고 노력한 때문”이라며 “일본 사회가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지방참정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도 요구된다. “그동안 재일동포들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졌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일코리안의 규모는 여전히 6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봉섭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이어 “우리가 일본 정부에 참정권 등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요구할 때 실질적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실시되는 총선 및 대선에서의 재외국민선거 역시 주목할만하다. 2011년 현재 일본 재외국민 선거권자는 57만 8,135명으로 단일국가의 재외국민으로서는 미국 다음이며, 중국보다도 많다. 2차례 실시된 모의선거에서도 일본 지역 재외국민들은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이며 ‘재외선거 파워’를 예고했다.

일제시대부터 1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른 바 올드커머와 함께 20세기 말엽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뉴커머가 급부상하고 있는 재일동포사회는 한일 양국 모두에서 파워그룹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세계적 거상으로까지 성장한 유력 한인경제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으며, 동포사회의 조직기반이 탄탄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비교적 낙후됐던 모국과의 연계성과 차세대의 정체성 탈피현상은 최근 일본 내 한류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