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될 수도 있단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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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될 수도 있단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죠”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1.03.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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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철 옥타 상임고문이 보내온 생생한 일본 지진 피해현장

조한철 옥타 싱임고문
저는 지난 11일 지진의 한복판 지역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체재하고 있었습니다.

경영하고 있는 호텔에서 영업회의를 마친 후 2시쯤 외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주문하는 중이었습니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에 급히 실외로 뛰쳐나갔을 때는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피니 땅이 융기하고 꺼지고 갈라지고 있었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기에서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쳤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다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어 해일피해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과 직원들의 안부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서둘러 차를 몰아 호텔에 돌아오니 모두 일본인인 직원들이 주차장 광장에 모여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한편 호텔건물의 손상과 기계설비 등을 체크했습니다. 전화가 불통인 상황에서 바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직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간신히 휴대폰 메일을 통해서 하나 둘 전해지는 어렴풋한 피해소식에 모두들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집이 떠내려갔다는 소식, 가옥이 무너졌다는 메일, 물이 안방까지 들어왔다는 전언 등이 날아들었습니다.

묵묵히 회사의 피해상황을 조사하고 넘어지고 깨진 비품집기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진이 어느 정도 안정 상태를 찾았지만 수도, 가스가 끊기고 온천물이 정지된 상태라 임시휴관을 결정한 후, 교대로 귀가조치를 하였습니다.

남아 있는 고객들과 함께 여진이 올 때마다 주차장으로 대피하기를 십수 차례 반복했습니다. 차가운 바깥 날씨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두를 더욱 지치게 했습니다. TV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각지의 피해소식에 희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며 총체적인 패닉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새벽에 원자력 발전소 문제가 불거지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됐고 손님들은 서둘러 하나둘 호텔을 빠져 나갔습니다. 날이 밝아 시내를 돌아보고 바다 쪽을 찾았지만 경찰 바리케이트로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피난소에서는 급수와 급식을 받으려 늘어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호텔에 돌아와 저수탱크(130톤저장)와 냉동 냉장고의 식자재 재고를 확인한 후 종업원들에 나눠주도록 하고 피난처가 없는 종업원들의 가족을 호텔에 수용하도록 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동경사업소를 걱정하며, 원자력발전소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호텔을 폐쇄하고 대피하라는 지침을 내린 후 밤 9시 탈출을 결행하게 됐습니다. 동경까지는 200km. 고속도로가 불통인 관계로 전혀 생소한 바닷가를 달리는 일반도로로 남하를 강행했습니다. 정전으로 사방이 암흑인 가운데 만약 이곳에서 해일이 다시 온다면 도망갈 길이 없고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달렸습니다. 다행히 도로에는 차도가 확보됐지만 군데군데 융기와 함몰된 곳을 피해야 했습니다.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해일이 할퀴고 간 풍경, 내려앉은 주택, 거꾸로 처박힌 자동차, 쓰레기더미 등 영화에서만 보던 광경들이 실제상황으로 펼쳐졌습니다.

8시간 걸려 동경에 생환했을 때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쌓인 피로를 못 이긴 채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이면에는 기회가 숨어 있는 법. 위기를 찬스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평소에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가서 싸구려 과자를 씹으며 잡지를 뒤적거리는 일상생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동경에서 경영하는 호텔에 호텔 직원 5가족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많이 걱정해 주신 옥타 동지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