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림시 피해자들을 구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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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림시 피해자들을 구제해 주세요"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07.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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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봉 목단강한국인회 회장, 국회의원들에게 청원서 내
재목단강한인회 엄재봉 회장
엄재봉 재목단강한국인회 회장은 13일 ‘흑룡강성 목단강 한국취업 사기사건’과 관련해 사건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서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성곤 민주당 국회의원, 박선영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등에게 각각 제출했다.

해림시 사건은 한국인 여모씨 등이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 해림시에 있는 현지인 790명으로부터 많게는 일인당 한화 1천400만원, 적게는 90만원씩을 사취한 사건을 말한다.

2008년 여름 중국 언론들이 공개적으로 보도하면서 중국에서 한국인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사건이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한화 1,200만원 이상을 사취당한 피해자가 338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이 일이 사기사건으로 밝혀진 후 가산을 팔아 빚을 갚는 과정에서 가정파탄과 가족 간 불화로 시달려 왔으며 심지어 자살을 한 사람,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몇이나 나왔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갖은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재중국한국인회는 지난해 해림시 피해자돕기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성금모금에 들어가 해림시 정부에 피해자들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재봉 회장은 “이들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면서 “마침 지난 5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돼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것이 국회의원과 정부에 청원을 올린 이유이다.

엄 회장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는 한국어 시험에 합격을 한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으로 취업 방문을 허가하는 제도로 해림시 피해자 가운데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이 107명이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해림시의 피해자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취업이 되도록 한다면, 해림시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국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엄 회장은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용허가제 시험에 합격해도 추첨을 통해 한국에 나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

엄 회장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피해사건의 경위보고서이다.

여용주 사기행각 경위보고서

2006년 4월 5일 한국인 여용주가 당시 하얼빈시 한인회 회장 유구준씨의 소개로 ‘열린 우리당 여용주 조직특보’, ‘대한민국대통령직속 국가전략연구소 여용주 소장’, ‘대한민국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여용주 소장’, ‘대통합민주신당 농어민특위 여용주 위원장’, ‘한국경찰일보 여용주 편집국장’ 등 명함과 한국의 고위층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보이며 임봉춘(조선족)이 경영하는 해림시임해대외노무복무유한회사를 찾아왔다.

당시 하얼빈시한인회 회장의 소개, 여용주의 가짜 명함 그리고 사실로 드러난 ‘한국경찰일보’의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이 그의 사기행각을 은폐시켜주었으며 피해자들의 믿음을 배가해 협잡을 당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은 일찍이 경찰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하얼빈의 ‘안중근의사기념비’를 찾아 그 역사적 의미를 새겨보는 모습을 신문지상에 버젓이 낸 여용주가 백야 김좌진 장군이 생애의 마지막 11년을 보낸 해림시(해림시에는 이미 중한친선공원이 조성되어있고 김좌진 장군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를 배신과 울분, 비분과 절망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06년 4월 5일 당시 하얼빈시한인회 유구준 회장의 알선으로 임해회사를 찾은 여용주는 지금 한국연수생제는 폐지되고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한국어수능시험을 볼 수 있는 인원이 얼마 되는가를 물으면서, 2006년 6월말까지 1,200명의 지표가 있으니 급히 준비하라고 했다.

당시 임해회사에는 500명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여용주가 2006년 말까지 2,000명의 총지표를 해주므로 6월말까지 500명을 한국에 파견하고 연말에 1,500명을 한국에 추가해서 보내기로 협의했다.

차후 임해회사는 노무인원을 모집하여 수능시험에 통과시켰다. 도합 1,280명에서 일인당 수능시험비용을 500원에서 1,200원(인민폐)을 받고 시험비용을 다시 450원씩 받았다. 모든 노무인원에게 80일가량 엄격하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시험에 합격시켰다.

그 당시 여용주와 유군준회장이 수능학교 현장에 와서 연설까지 상세히 하고 노무신청자들에게 격려와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출국시간까지 알려 주었다. 임해회사는 일인당 총지출이 2,780원임에도 불과하고 수능생 일인당 1,160원을 받아 207만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후 여용주는 북경에 자주 왔다. 여용주가 말하기를 임해회사 노무송출항목은 전임 노동부장관 이상수가 직접 추진하는 일이며 이상수가 국회의원선거에 자금이 인민폐로 350만원(한화 6억 5천만원)이 필요하니 빨리 부치라 하면서 강성녀는 이상수 부인이라며 강성녀 계좌번호로 부치라 하여 여용주가 가르친 이 계좌로 부쳤다.

그 후 또 일 추진비용, 선물비용 등 명목으로 도합 인민폐 80여만원을 가져갔다. 당시 하얼빈시한인회회장 유구준이 하는 말이 여용주가 북경에서 인력송출사항을 잘 추진하고 있으며 여용주 옆에는 중국 인력송출회사 사장들이 줄줄 따라다니고 있으나 인력송출보다는 전부 임해노무회사로 주니 안심하라고 하였다.

유구준은 또 “임봉춘 너는 하늘에서 복이 떨어졌다”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유구준 회장을 굳게 믿었다.

여용주가 위조해 보낸 공문을 추려본다.

2007년 10월 30일 한국 노동부에서 임해노무회사에 보내는 업무협조공문/2007년 11월 7일 한국노동부에서 중국 상무부에 보내는 업무협조공문/2007년 12월 21일 중국 상무부에서 한국 노동부에 보내는 명액추천서/2008년 2월 27일 중국 상무부에서 한국 노동부에 보내는 노무수출 허가통지서/2008년 1월 23일 제1차 한국 부산 출입국사무소 360명 사증발급인증서/2008년 3월 12일 제2차 한국 부산 출입국사무소 430명 사증발급인증서/2008년 4월 11일 제2차 한국 부산 출입국사무소 1,747명 사증발급인증서/2008년 4월 17일 제2차 한국 부산 출입국사무소 2,000명 사증발급인증서 / 2008년 4월 3일 한국 STX 조선소 회사 업무협조 통보문/2008년 4월 15일 한국 STX 조선소 회사업무 계약서.

당시 중국과 한국 양국의 공문과 법무부 사증인증서 그리고 STX 협조문 원본이 있었기에 임해회사는 여용주를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후에 여용주는 북경에 몇 개의 가방회사를 등록해 놓고 있는 한국인 이운학(현재 목단강시공안국에 의해 형사 구류 중)을 노무고용허가제 전문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아래는 해당 진술 내용이다.

2006년 4월 8일 여용주가 한국 노동부 차관이 북경에 도착하니 접대한다 하여 송금 7,000원 인민폐를 주었다.

2006년 8월 18일 여용주가 북경에 빨리 나오라 해서 가보니 대통령 친필이라 하면서 편지 한 장 보여주면서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 했다.

2006년 9월 13일 여용주가 안심하라, 이달 중으로 오다 떨어진다 했다.

2006년 10월 24일부터 1개월이 넘도록 여용주가 연락이 끊어졌다.

2006년 12월 6일 여용주가 갑자기 연말에는 꼭 가게 되니까 빨리 준비하라고 연락이 왔다.

2007년초 여용주가 또 연락이 오기를 구정 전에는 바로 나가야 하니 인력숫자 확인해 놓으라 했다. 구정 후에는 하는 말이 지금 한국과 중국 간의 인력수출 협상에서 최종 협상이 없으나니 4월 중국지도자가 한국 방문하여 협상 사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007년 4월 13일 여용주가 연락오기를 다음 주에 한국 노동부에서 중국으로 인력수출 건 넘어간다. 계획대로 의향서 체결했으니 우리 계획대로 될 수 있다고 했다.

2007년 4월 17일 여용주가 하는 말이 인력이 5월 20일경에 나간다 했다.

2007년 4월 26일 여용주가 인력수출 건을 상무부와 정식 사인했다고 했다.

2007년 12월 9일 여용주가 인력수출이 한국 원자력 발전소건설에 350명 먼저 간다고 했으나 빈말뿐이었다.

2008년 1월 17일 여용주가 연략오기를 포스코 원자력은 안되고 조선소로 넘어간다고 했다.

2008년 2월 8일 여용주가 연락오기를 16일 조선소에서 목단강으로 사람이 바로 간다. 즉시 사증 준비 해가지고 간다 했다. 자기는 북경상무부에 들려서 목단강으로 간다 했다. 그러나 말뿐이고 오지 않았다.

2008년 2월 21일 여용주가 23일 목단강 항공편 예약했다 했다, 그러나 오지도 않고 연락마저 끊어졌다.

2008년 3월 10일 여용주가 임해회사에 인민폐 400만원 송금시켜줘야 일 추진이 빨라서 일주일이면 끝난다 했다.

2008년 3월 17일 한국 조선소에서 심양에 온다고 하여 심양가서 기다리면 심양영사관에 접수시킨다고 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2008년 3월 18일 여용주가 조선소에서 싸인 받아 북경에 전한다면서 조선소 최상무가 서류 받아 공안청에 전해주고 심양에 가고 조선소 회장은 내일 한국에서 오후 3시 30분에 심양에 도착한다 했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2008년 3월 24일 여용주가 북경서 심양에 온다하여 공항에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여용주는 돈을 받은 후 360명의 비자는 3월 14일에 나오고 3월 21일 대련항으로 출국시키기로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빈말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인원들이 정부와 공안국에 신고하니 STX중국인력수출사업 총 대리인 이운학 대표가 임해회사에 내려왔다.

4월 9일 그는 전체 노무인원을 집합시킨 후 현재 한국 STX회사에서 비밀문서 유출사건이 발생하여 시간이 밀리는데 정확한 날짜는 4월 17일 비자를 받고 4월말 전으로 모두 출국한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감감무소식이자 이운학 대표는 또 4월 30일 임해회사에 와서 기한을 5월 10일 전에 비자를 받고 5월 20일 전에 출국한다고 답보하였다. 그러나 그 뒤는 또 종무소식이었다.

현재 여용주는 790명의 중국백성의 돈을 1,420만원 사기한 혐의로 한국경찰에 구류중이다.

해림시 임해 대외노무복무 유한회사 피해자 대표: 임봉춘 백운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