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 원망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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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 원망도 했지만”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0.07.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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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인 구도자 곽한나 수녀님의 치유와 고백

순백의 윔플(수녀들이 머리와 목을 가리도록 쓰는 가리개)과 검은색 베일의 아름다운 자태에 끌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수도자 생활에 들어선 곽한나 수녀님.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영국의 봉쇄수녀원으로 옮겨 다니며 이주생활을 해온 그녀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대륙과 대륙을 옮겨다니며 절박하게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는 질곡의 인생여정과는 달리 치유의 느낌이 묻어난다.

6․25의 포화를 정통으로 맞은 직후 1․4후퇴에 떠밀려 충청도 두메산골 초평으로 이주할 때 이미 그녀의 떠돌이 인생은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영국인 신부에게 감화를 받아 구도자의 순결한 모습에 끌려 신앙의 길에 몸을 담았지만, 열아홉 소녀에게 수녀의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이어지는 수면부족, 수직적 위계, 엄격한 규율 등 수도원의 성벽 안에서 자유를 꿈꾸던 그녀는 마침내 1988년 캐나다로의 첫발을 내딛는다.

캐나다에서 6년간의 구도생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의 봉쇄수녀원으로 향하기까지의 여정은 혹독했다. 예기치 않았던 스캔들과, 경제적인 어려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어딘가 먼 곳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신앙과 사랑, 봉사에 대한 그녀의 간절함은 깊어져만 갔다.

고국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뒤이어 인생의 버팀목이던 큰 오빠마저 하릴없이 잃었을 때 그녀는 고통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방인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고,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소중한 사람을 한 명씩 야금야금 잃은 감정이 우울증으로 깊어졌다”는 곽한나 수녀. 그러나 그녀는 더욱 깊어진 기도와 호스피스 활동 등 봉사활동을 통해서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방법’을 체득했다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은 고백서이자 치유 에세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곽한나 수녀가 더듬고 있는 자신의 인생역정은 고발이나 회한보다는 고백과 기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나온 인생 편력과 영혼의 발자취들을 기록한 고백서를 써서 하느님 앞에 기도로서 바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는 그녀의 소박한 고백은 해외에서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구도자들의 입장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지금은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도자의 이야기”라며 “그 길이 때로는 고통으로 뒤덮인 길이나 그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내와 용기를 줄 것”이라는 빌 걸 영국 성공회 지도 사제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곽한나 수녀의 첫 에세이 제목은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초록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