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벌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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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벌초 단상
  • 김병태
  • 승인 2008.09.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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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태(본지 편집위원)
추석을 앞두고 연레행사처럼 고향에 다녀왔다. 경북 예천 문경새재 넘던 길이 아니고 새 길이 뚫려서 산마다 터널이 생겨서 다섯 시간 걸리던 길이 두 시간 반으로 줄었다. 무상하게 갈 때마다 변화를 실감하는 벌초여행이다.

고향 가는 도로도 좋아지고 승용차도 커지지만 시골은 언제나 그대로 나를 반긴다. 고추가 빨갛게 익었고, 누런 벼는 햇살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제는 산소 지키던 농부들도 없고 연로하신지라 도시에서 벌초라도 하러오면 다행인 듯 반긴다.

조상들 산소를 보살피는 마음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갸륵하지만 몇 해나 더 해야할지 모를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쓸쓸함과 피곤함이 섞여서 드는 생각만은 아니다.

매번 산소까지 낫질을 다시하면서 새로 길을 낸다. 우리가 다녀가면 내년까지는 자연이 길을 덮는다. 다시 한해 지나면서 없던 길을 다시 만들면서 벌초하는 것은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생고생이다.

생활의 변화에서 풍습도 따라 변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늦게 바뀌는 것중의 대표적인 것이 매장문화라서 그럴 것이다. 변하기 어려운 풍습의 마지막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전개될 새 길을 가는 것도 아닌 마지막 없어질 그 무엇에 낫질을 하고 돌아오는 길의 감회가 남다르다.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해 무지몽매한 노력을 다하면서도 스스로의 마음은 개척자인양 스스로 으스대는 삶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그꼴이라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나는 시골생활을 겪은 마지막 세대라서 그나마 고향을 그리워하고 산다. 증조부 산소옆에 빨간 패랭이꽃에서 등굣길의 추억이 살아나고, 어머니 산소 오르다가 보리나락에 까슬리던 등짝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읍내 해장국집에서 토종된장에 시래기 푹푹 삶은 아침밥을 먹었고, 일가집에서 곱게 기름짜서 보관했던 ‘진짜 참기름’을 소중하게 받아온다. 가버리는 것이 있다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들도 있는 것이다.

눈부시게 압축 성장해온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는 이리도 버려야 할 것들과 지켜야 할 것들이 한곳에 뒤섞여서 살고 있기에 대화와 소통이 쉽지 않을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자면서 내가 듣기에는 담벽만 쌓는 듯한 오늘을 보면서 생긴 느낌이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도시와는 달리 힘들수록 함께 사는 정이 묻어나는 고향 찾아 떠나는 벌초여행이 나처럼 도시에서 살고있는 현대인에게는 또 다른 현장학습이자 자신을 되돌아보는 추억여행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내년에는 조카들도 데리고 오라고 동생에게 얘기하는 내 모습을 보니 어느덧 머리에 흰서리가 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