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과 방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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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과 방송의 힘
  • 정길화
  • 승인 2007.09.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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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문화방송 PD, 본지 편집위원)
지난 9월 3일은 제 44회 방송의 날이었다. 이 날은 근대방송이 시작된 지 80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1927년에 이 땅에서 방송전파가 처음으로 발사되었던 것이다.

방송80주년을 기리는 이 날, 그동안 현장에서 우리 방송을 지키고 가꾸어온 여러 유공자들에 대한 훈포장 시상식도 있었다. 이 훈포장 시상은 10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즉 지난 1997년 이후 10년 만에 방송 관계자들이 훈장을 받은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방송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97년 이래 우리 방송은 두 차례의 대선에서 TV토론 등으로 미디어 선거를 정착시키고 방송저널리즘을 활성화시켰다. IMF 외환 위기 때는 금모으기 캠페인 등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했다.

드라마 등 한류콘텐츠로 국가 이미지를 고양한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또 디지털 시대를 개막하고 뉴미디어를 이끌 수 있도록 기술발전을 주도한 것도 이 기간 중 방송의 공로다.

이날 훈포장 시상식장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는 역시 연기자 이영애씨다. 그녀는 <대장금>을 비롯한 드라마 프로그램에서의 공로로 문화포장을 받았다. 또 이날 드라마 작가 김영현씨도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대장금>의 작가다. 그에 앞서 화관 문화훈장을 받은 MBC 미술센터의 봉현숙 국장은 <대장금>에서 의상 등 미술을 진두지휘한 디자이너다.

9월 3일 방송의 날에 보도, 제작, 편성,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왔지만 드라마 한 편이 이토록 많은 훈포장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대장금>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날은 <대장금>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상자의 반열에서 빠질 수 없는 <대장금> 연출자인 이병훈 피디가 상을 받지 않은 것은 그이가 이미 2006년에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훈장을 받은 후, 5년 이내에는 다시 같은 공훈으로 훈장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에 따라 그는 이 날 수상자 명단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장금>은 연출자, 작가, 연기자, 미술디자이너에게 골고루 훈포장을 안긴 셈이다.

대만에서, 홍콩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또 러시아에서 이집트에서 가는 곳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대장금>은 그렇게 상찬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지나간 10년은 한류 콘텐츠로 국가 이미지를 크게 제고하고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 데케이드(decade)로 각별히 기록되어야 한다. <대장금>외에도 <겨울연가>, <주몽>, <올인> 등의 한국 방송드라마는 세계 곳곳에서 붐을 일으켰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중국의 사전에 표제어로 공식 등재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신화(新華) 신사어사전(新詞語辭典)’ 상하이 상무인서관, 2002년). 바야흐로 한국 방송은 한류의 생산기지, 유통기지로서 곧 한류의 중심이 되었다. 이영애 외에도, 배용준, 최지우, 장동건, 이병헌 등 유명연예인(celebrity)들은 우리 방송프로그램을 거점으로 하여 세계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아시아, 미주, 유럽, 러시아, 중동 등의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에 한국방송 콘텐츠와 방송망을 확장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드라마를 매개로 전 세계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정체성과 연대감도 공고히 되고 있다. 재일동포나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타시켄트의 고려인, 멕시코의 에네껜 한인 후손이 이들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알고 한국적 정체성을 체감한다.

한국의 음식, 의상, 문화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드라마의 위력이자, 방송의 힘이다. 2007년 방송의 날을 맞으면서 다시금 방송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느끼고 방송인들은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시청취자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