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리따젤 꼬레사람 국시 예찬(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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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리따젤 꼬레사람 국시 예찬(禮讚)
  • 장준희
  • 승인 2003.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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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리따젤 꼬레사람 국시 예찬(禮讚)

지난 토요일 모처럼의 여유를 가지면서 난 꼬레사람 친구 '지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께 그가 한 말 '국시 먹으로 가자'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마와 나는 정오경에 시내에서 만나 나의 애마(愛馬) '지굴리'를 타고 국시를 먹으러 갔다.

지마는 꼬레사람 밀집지역인 타쉬켄트시 외곽인 꾸일륙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당초 국시를 먹으러 가기로 한 곳은 '뽈리따젤'이다. 뽈리따젤은 구소련 시절부터 유명한 집단농장이다. 구소련의 막강한 서기장이었던 브르즈네프가 왔다갔으며,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왔다가 그런 집단농장이다. 옛날의 명성만큼이나 한때 잘 사는 집단농장이었다.

뽈리따젤 내에는 국시를 파는 곳이 총 다섯 곳이다. 농장입구 왼편에 잘 지어진 카페가 하나있고, 일반가옥을 개조해서 개장이나 국시 등을 파는 곳이 3곳이다. 우리가 국시를 먹으러 찾아가기로 한 곳은 뽈리따젤 중앙에 위치한 현지 노천 카페이다.

우리네 국수를 이곳에서는 '국시'라고 한다. 맛이나 모양은 상당히 다르지만, 국시라는 말은 함경도 육진방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말 국수의 방언(方言)이다. 1937년 연해주 지역의 한인들이 이곳 중앙아시아로 들어오기 전까지 '국시'란 없었다. 그와 비슷한 '라그만'이 있었을 뿐이다. 사실, 비슷하기는 하나 완전히 다르다. 또, 연해주 지역의 한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만들어 먹었던 당시의 국시와 지금의 국시는 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 현지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국시의 맛은 역시나 국물이 좌우한다. 뽈리따젤 중앙 카페에는 독립이후 늘어난 우즈벡 사람들 틈 속에서 꼬레사람 할머니가 국싯물을 우려내고 고기를 다진다. 국시의 맛을 다듬고, 우려내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 할머니가 없다면, 뽈리따젤 국시는 벌써 우즈벡 사람들의 라그만처럼 변했어도 한참이 되었을 것이다. 밀려드는 우즈벡 사람들을 꼬레사람의 국시맛으로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하는 문화첨병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할머니가 없었다면, 뽈리따젤의 그 많은 우즈벡 사람들은 그렇게 맛있는 꼬레사람의 국시를 그렇게 싼 가격으로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뽈리따젤 중앙 카페의 주 고객들은 현지 우즈벡 민족들이다. 중앙 카페 바로 옆에 있는 뽈리따젤 노인정의 할아버지들이 가끔은 이 중앙 카페를 이용한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카페의 고객층의 성향 때문에 이제는 샤슬릭도 구워서 판다. 국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큼직한 '베고자'도 인기를 끌고 있다. 베고자의 안꼬는 팥이 아닌 삶은 양배추와 소고기로 다진 속살이다. 이 역시 안꼬의 맛을 꼬레사람 할머니가 만들어 내고 있다.

뽈리따젤 국시는 우즈베키스탄의 여느 국시들처럼 비슷한 양념과 비슷한 소스가 들어간다. 배추김치를 적당히 삶아서 버무려 썰고, 쇠고기를 듬뿍 넣었다. 향신료 '긴자'를 넣어 현지인들이나 어느 정도 미적(味的)으로 현지화된 꼬레사람들의 입맛을 돋구고 있다. 국싯물에는 단맛을 곁들였다.

이러한 맛내기 방식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어느 정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어쩌면, 현지인들과 꼬레사람들의 중간적 맛을 내는 국시가 비위생적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을 만큼 맞게 변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뽈리따젤 중앙 카페 국시는 맛있다. 가끔은 그 국시가 생각나리만치 맛이 있다. 특별한 조미료도,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같지 않은 그 국시가 맛이 있어 시내에서 반시간 자동차로 걸리는 그 길을 찾아간다. 600숨짜리 국시 한그릇을 먹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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