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극빈의 절벽에서 - 인도 비하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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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극빈의 절벽에서 - 인도 비하르(1)
  • 파트나(비하르) = 이유경
  • 승인 2006.10.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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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끝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줄기를 이어받고 북쪽으로는 네팔과 국경을 맞대고 뻗어있는 인도 북부의 비하르 주(Bihar State)는 인구 약 85%가 하층 카스트와 달리트(불가촉천민)로 구성된 하층민의 땅이며 인도에서 ‘가장 빈곤한 땅’으로 꼽히는 곳이다.

좌파무장운동인 낙살리트 운동(Naxalite)을 포함해 급진 저항운동이 대단히 활발하고 카스트 정치의 폐해가 극명하게 솟구치고 있는 이곳은 ‘카스트 정치’와 ‘패거리 정치’로 얼룩진 인도의 정치판, 그리고 카스트와 계급 모순이 뒤엉킨 인도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인도 전체 28개 주(분리독립 투쟁 주 포함) 중 우타 프라데쉬(Uttar Pradesh)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는(두 주의 인구는 인도 총 인구의 1/4을 차지) 점까지 고려하면 “비하르는 인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땅”이라는 이 지역 한 문화운동가 표현이 섣부른 과장만은 아닌 듯하다.

12월 중순, 두 번째로 발 딛은 파트나(Patna: 비하르 주도)정크션은 역을 이용하는 기본 인파에 사이클 릭샤와 걸인부대 그리고 기차역 인근 장터를 오고가는 또 다른 인파로 17시간 기차여행에 지친 이방인의 혼을 홀딱 빼놓고 있었다. D호텔로 향하면서 나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들은 왜 나를 거부했을까?’

약 2주전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가이드북이 추천한 한 호텔을 찾아갔지만 ‘방 없음’이라는 말에 발길을 돌렸던 나는 같은 골목에 위치한 대여섯 군데 호텔에서 전부 문전박대 당했다. 호텔문을 들어서기도 전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은 모두 ‘노 룸!’을 짜증스럽게 던졌다.

“내일은?” “내일도 모레도 노 룸!” ‘혹시나’ 하고 길 건너 인터내셔널 호텔문을 두들겨 보지만 ‘역시나’ 감당하기 어려운 방 값이다.

그러고 보니 기차역에서 이 ‘이상한’ 호텔 골목으로 나를 태워다 준 사이클 릭샤 운전자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 방 없어. 내가 안내하는 호텔로 가는 게 어때?” 전형적인 인도 릭샤꾼들의 이 반복되는 보챔에 나는 “입 닥쳐 주세요!”라며 버르장머리 없게도 노인네에게 언성을 높였었는데, 그는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릭샤는 어느덧 D호텔에 이르렀다. 호텔 유리창은 말끔히 수리되어 있었지만 방안의 구멍들은 여전했다. 모기장을 제공받기로 하고 익숙한 거리에 나서자 ‘생수 단골’ ‘전화 단골’을 만난 구멍가게 주인들이 환하게 나를 반긴다.

내 느낌에 약 10미터 간격으로 발에 채이는 넓은 쓰레기 밭과 그 곳에서 코를 파묻고 먹이를 뒤져대는 소, 돼지, 개의 모습도, 거리에 차린 ‘소박한’ 부엌에서 먹거리를 장만하는 아낙네의 모습도 그리고 어느 지역보다 유독 눈에 자주 들어오는 넝마주이 아이들의 모습도 모두 비하르의 극빈과 비개발 풍경들이다.

“비하르에는 일자리도, 식량도, 도로도, 최저임금도, 보안도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누구든 말이 통하는 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불만들이 쉽게 쏟아져 나왔다.

“도로를 닦아야 한다. 길은 모든 개발의 기본이다.” 힌두 근본주의 정당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의 비하르 주 대변인 키란 가이(Kiran Ghai)는 “비하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하필 ‘길’을 선택했다. 그렇지! 이 배부른 자들의 차가 무리없이 다니려면 길이 가장 중요하겠지.

10억 인구 중 약 3억7천명이 절대빈곤에 처해있고 인구 5명당 1명(약 2억)이, 임신여성 열명당 아홉명, 그리고 어린이는 절반이 영양실조라는 사실 모두 대 도시 일부와 소수 ‘장자’(백만이든 억만이든)들 얘기에 불과한 경제성장률 그늘에 가려져 미디어에 좀처럼 비춰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2003년 한 해 부유한 축에 속하는 펀잡(Punjob) 주에서만 3천명의 농민이 가난과 부채에 목숨을 끊었고 인도 전국적으로는 1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아사’와 ‘자살현상’은 인도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물론 비하르는 그 핵심 지역 중 하나다.

죽지 않고 근근이 살아가는 나머지 소작농들-농촌인구 다수는 ‘농민’(Farmer) 이라기보다는 소작농(Peasant)이다-의 목숨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이들의 임금 사정을 보자. 임금은 대부분 ‘돈’보다는 ‘쌀’로 지급한다. 그나마도 지주들은 소작농들한테 의무 수확량을 거둘 때는 큰 그릇으로 재지만 임금은 ‘하타이’(Hatai)라 부리는 작은 그릇으로 지급한다.

이밖에도 소작농 여인들이 직면한 지주들에 의한 성폭력은 해묵은 현상으로 ‘고착화’돼 있다는 게 델리에서 개최된 ‘인도진보연성연합’(AIPWA) 전국대회장에서 만난 여성 소농들이 너나없이 쏟아낸 항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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