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철폐’ 미주 지역 민주화 운동 생생한 증언- ①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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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철폐’ 미주 지역 민주화 운동 생생한 증언- ①캐나다
  • 조행만기자
  • 승인 200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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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30년만에 공개] 개헌청원 서명운동

지난 2월5일 참여정부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그동안 비밀스럽게 간직해왔던 외교문서들을 30년이 넘어서 공개했다. 이에 따라서 ‘재캐나다 반한단체 활동’이란 제목의 외교문서도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74년도에 작성된 이후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정부 문서 창고에서 썩고 있던 이 문서들은 그동안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해내듯이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 당시의 긴박한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 지난 5일 공개된 외교문서에 포함된 캐나다 The New Korea Times의 1974년 당시 지면.
70년대초 유신 반대 운동이 격화되는 가운데 함석헌, 장준하 등이 주동이 되어서 73년도에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이는 해외동포들에게도 이어졌는데 캐나다와 미주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의 취지문이 캐나다 한인회에도 전달되면서 이 지역의 종교인, 지성인들이 나서서 반유신 철폐운동을 국외로 이어갔다.

74년 1월23일 캐나다에도 ‘개헌청원 서명운동 발기인회’가 결성되었는데 이상철 목사외에 전충림, 강원진, 강태룡 등 총 17명의 캐나다 지역에 살고 있던 종교인, 지성인들이 서명을 했다.

그들은 1·8 비상조치에 의해 국내에서 정치인은 물론 종교인들이 상당수 구속되자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펼치면서 지원에 나섰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이상철 목사다. 일찍이 이민 1세로 캐나다에 발을 디딘 이 목사는 토론토 연합교회서 시무하고 있었다.

이 목사는 모금운동을 캐나다 전 지역의 동포들에게 확산시켜나갔다. 이러한 사실은 밴쿠버 목사 시절에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은 장범식 교수(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수학교수)에게 1974년 2월6일에 보낸 서한에 잘 나타나있다.

“지난 1월8일 비상조치 령에 의해 상당수의 성직자와 지성인들이 현재 구금중입니다. 북미대륙 교회지도자들과 지성인들이 이 비참한 사태를 좌시할 수 없어서 모금운동을 전개해 지난 2주 동안에 1,000불을 모금했습니다. 장 교수님이 밴쿠버 지역의 교포들에게 호소해 얼마라도 모금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또 “우리 교회가 토요일 아침에 방송을 내보냈더니 어느 70세 교포 노인이 그 길로 달려와 눈물을 흘리면서 100불을 놓고 갔다”는 일화를 편지 말미에 적어 놓기도 했다.
이에 당시의 유신정권은 재캐나다 동포들의 반유신정권 활동을 반한단체활동으로 왜곡, 캐나다 주재 공관을 통해서 철저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같은 해 3월28일 밴쿠버 총영사는 당시의 외무부 정보문화국장에게 “1974년 1월23일자 토론토에서 발간된 불온선전물 ‘The New Korea Times 및 ’개헌 청원 지지서명 운동 취지문‘에 대해 동포들은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 시책에 극히 비판적이며 반국가적인 언동이 자자하다고 합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캐나다 동포 전충림씨가 발행하는 ‘The New Korea Times’의 고문이었던 이 목사는 1974년판 신문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의 글들로 반유신 운동을 펼쳐나갔다.

1974년 1월23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를 보면 ‘박 정권 기독교 탄압’이란 제하에서 그는 “권력유지에 혈안이 된 박 정권은 드디어 기독교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개헌 청원 지지 백만인 서명 운동은 지하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는 또 사설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형을 받은 은명기, 박형규 두 목사의 사건은 이미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었다”면서 “지난 수개월동안 독재체제에 항거하는 데 기독교 세력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백만인 서명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던 한국신학대학 김재준 명예총장의 구속에 대해서도 강력한 비판의 기사를 실었다.

이후 1974년 4월8일 민청학련 주동자들에 대한 사형 구형이 내려지자 이 목사의 반유신 투쟁은 모금활동과 서명운동으로부터 더 적극적인 시위의 양상을 띠게 된다.

1974년 7월 달에 주캐나다 대사는 당시의 외무부 장관에게 “7월20일에 이상철 목사 등 7명의 교인이 한국대사관 앞에서 민청학련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 구형에 항의해 데모를 일으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유신정권에 대한 기억은 3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빛바랜 이야기지만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이 땅의 민주화 정착에 캐나다 동포들이 크게 기여한 사실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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