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사할린 한인문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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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사할린 한인문제 보도
  • 연합뉴스
  • 승인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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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가 사할린에 특파원을 보내 사할린 한인문제를 다뤄 주목된다.

   르몽드는 21일 인터넷판에서 '한인 노예의 후손 천태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퇴한 사할린 동포 천태식 교수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중심으로 40만 동포들의 어제와 오늘을 심도있게 다뤘다.

   천 교수는 자신이 사할린에 끌려온 여느 동포와 비슷하게 13살이던 1943년 9월 일본 당국의 사탕발린 약속만을 믿고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 사할린에서 살아온 역정을 고발했다.

   천 교수는 "우리는 꼭두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했으며 따뜻한 물이나 난방시설은 없었고 보급된 1개월분 식량은 10일분에 불과했다"고 증언하고 쌀과 설탕을 바꿔먹던 일과 학교에서 당한 모욕 등을 회고했다.

   10년간 야학에 다녀 완전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천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1946년 2월 "소련군이 이곳에 진주하게 됐는데 우리는 그들의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처음 본 그들의 눈이 매우 크고 동그란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한인들과 함께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들은 2년간에 걸쳐 귀국할 수 있었는데 한인들을 끌고 온 일본당국은 "우리를 버렸으며 누구도 우리의 귀국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천 교수는 말했다.

   지난 1991년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귀국경비가 없는데다 모국에 돌아가도 맞아줄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현실적인 사정에 따라 현지에 계속 눌러앉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지 한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이 자신을 버린 것과 지난 1991년 구 소련 붕괴 당시 조국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은 것을 합쳐 "두번이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르몽드는 40만 한인동포들중에는 러시아식 혹은 일본식 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하고 제1세대가 모국어를 잊어버려 자손들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르몽드는 또 이같은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일본 정부가 그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을 한인동포들은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rjk@yna.co.kr
  (끝)

 
   등록일 : 12/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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