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소'를 황 교수보다 더 아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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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소'를 황 교수보다 더 아끼는 사람
  • 중앙일보
  • 승인 2005.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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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5-06-06 06:11]

[중앙일보 박태균] "황우석 교수님의 일을 미력하나마 돕는 게 한없는 영광입니다. 평생 그분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영동리의 서울대 생물공학연구실. 주변에서 '황우석 농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중국 동포 이성암(51)씨는 황 교수가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실험 동물들을 믿고 맡기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씨는 성실함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황 교수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동물 관리에 철두철미하다. 황 교수가 바쁜 일정 때문에 농장을 찾지 못해도 "이씨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할 정도다. 황 교수는 심지어 연구원들에게도 늘 "그를 닮아라"고 독려한다.

이씨는 7만여 평의 실험 농장을 혼자 관리한다. 소 100마리, 염소 70마리, 사슴 7마리가 그의 식구다. 그가 돌보는 소 중에는 국내 최초의 체세포 복제 소로 유명한 '영롱이'(1999년 탄생)도 포함돼 있다. '광우병 내성소'도 이곳에서 자랐다.

황 교수와 이씨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를 만나기 전까지 황 교수는 농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이 고돼서 모든 사람이 기피했고 기껏 채용한 사람도 한두 달을 버티지 못했다. 이때 농협 직원 소개로 그를 만나 지금껏 인연을 이어왔다.

황 교수는 그를 '태백 아빠'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한다. 태백은 중국에 두고 온 이씨의 외아들(21) 이름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이씨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1999년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그는 늘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이 무렵 황 교수를 만났다. 이씨의 성실함에 반한 황 교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붙들고 싶었다.

이때 기회가 왔다. 2003년 황 교수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김하중 주중대사가 연구에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뭐든지 돕겠다고 한 것이다. 황 교수는 "이씨의 한국 체류를 합법화해 주시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이 덕분에 이씨는 지난해 1월, 3년 체류가 가능한 초청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황 교수에게 소는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그의 오늘이 있게 한 수정란 이식과 체세포 복제가 모두 소를 통해 이뤄졌다. 어릴 적 황 교수의 별명도 '찍소'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일에서 눈을 떼지 않는 소 같은 성격이라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황 교수는 "농장을 잘 관리하고 동물을 정성껏 돌보는 것은 우리 연구의 시작이면서 끝"이라고 강조한다. 어렵게 탄생시킨 체세포 복제 송아지를 잘 돌보지 않아 죽어버린다면 연구는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씨가 농장에 들어온 뒤 모든 것이 편해졌다. 소가 아프면 소 옆에서 잠을 자고, 겨울엔 아픈 송아지를 5평 남짓한 자기 방으로 데려와 함께 자는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방에서 송아지가 '실례'를 해도 불쾌한 표정 한번 짓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우리 연구팀 사람들은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실험 동물이라고 해서 절대 함부로 다루지 않고,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는 법이 없다"고 치켜세우면서도 "그래도 태백 아빠에게는 미치지 못하며, 그 점에선 나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씨는 "황 교수님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제 안부와 동물들의 상태를 묻고 농장에 오시면 텃밭에서 키운 상추.배추를 캐 드십니다. 요즘도 사모님이 보름에 한 번씩 쌀.반찬.과일을 직접 싸가지고 오십니다." 그는 황 교수 내외가 소박하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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